「금따는 콩밭」은 1935년 3월 『개벽』에 발표되었다. 1930년대에는 ‘한국판 골드러시’가 성행하던 때이다. 1933년 한 한 해에 조선 땅에서 개발된 금광이 약 3200군데 정도였다고 하니 얼마나 금에 열광했었는지 알 수 있다. 「금따는 콩밭」은 금을 모티브로 당시의 시대 상황인 인간의 탐욕을 해학적으로 희화한 작품이다.
「금따는 콩밭」 이해
영식은 가난한 소작농이다. 영식은 금광이라는 수재의 허풍에 ‘콩이 거진 다 자란 허울 멀쑥한’ 콩밭을 파헤쳤다. 수재는 농사는 안 짓고 금점을 잡겠다고 돌아다니다 돌아온 인물이다.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리끼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거칠은 황토 장벽으로 앞뒤 좌우가 꽉 막힌 좁직한 구덩이, 흡사히 무덤 속같이 귀중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부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에 자욱하다.
곡괭이는 뻔질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이 내려 쪼며 (생략)
영식이 금을 캔다고 들어간 구덩이 속은 더럽고 지저분하다. 역겨운 흙내가 자욱한 곳에서 흙을 파지만 금은 나오지 않고 흙만 헐린다.
이놈 풍치는 바람에 애꿎은 콩밭 하나만 결딴을 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낭패다. 세다. 세 벌 논도 못 맸다. 논둑의 풀은 성큼 자란 채 어지러이 널려 있다. 이 기미를 알고 지주는 대로하였다. 내년부터는 농사질 생각 말라고 발을 굴렀다. 따은 암만을 파도 지수가 없다. 이만해도 다섯 길은 넘었으리라. (생략)
마음은 “갈아먹으라는 밭이지 흙 쓰고 들어가라는 거야?”라고 웬 금이 나온다고 고 지랄들이냐고 핏대를 올린다.
그다지 잘되었던 콩 코기는 거반 버력더미에 다 깔려 버리고 군데군데 어쩌다 남은 놈들만이 고개를 나풀거린다. 그 꼴을 보는 것은 자식 죽는 걸 보는 게 낫지 차마 못 할 경상이었다.
농토는 모조리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대관절 올 밭도지 벼 두 섬 반은 뭘로 해내야 좋을지. 게다 밭을 망쳤으니 자칫하면 징역을 갈지도 모른다. (생략)
영식은 이제 수재 이름만 들어도 이가 갈렸다. 영식은 처음에는 수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데 수재는 세 번째는 술까지 사 들고 와서 계속 꾀었다. 아내도 ‘허리를 쿡쿡 찔러’ 영식을 부추겼다. 아내는 아내대로 금이 나온다는 말에 욕심이 동하였을 것이다.
동네 노인은 “국으로 땅이나 파먹지 이게 무슨 지랄들이야!” 하고 거친 소리를 하지만, 수재는 낙담하는 기색도 없이 땅을 판다.
“줄이 꼭 나오겠나?”
하고 목이 말라서 물으면,
“이번에 안 나오거든 내 목을 베게.”
서슴지 않고 장담을 하고는 꿋꿋하였다. (생략)
양식을 빌려다가 산재를 지냈지만, 여전히 금은 나오지 않았다. 빌려온 양식마저 갚을 길이 없게 되자 아내는 불안하고 초조해했다. 그런 아내를 영식은 주먹으로 때리기까지 한다. 그러자 수재는 손에 흙을 움켜쥐고 ‘금줄을 잡았다’고 하였다. 금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불안한 수재는 영식 부부에게 ‘한 포에 댓 돈씩은 넉넉히 잡힌다’고 거짓말로 속이고 ‘오늘 밤으로 꼭 달아나리라’ 결심하였다. 수재는 ‘거짓말은 오래 못 간다’고’ 생각하고 비밀이 드러나서 뼈다귀도 못 추리기 전에 훨훨 달아나리라 결심하였다.
작가가 무모하게 금을 쫓던 당시 세태를 풍자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영식의 어리석은 욕심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에서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1930년대 가난한 농촌 현실이 금이라도 캐서 부자가 되어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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