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에 실려 있는 「용궁부연록」은 ‘용궁에 가서 잔치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작가 김시습이 조선 세조 때 인물인 것을 생각하면, 고려 때 개성이라는 공간과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까지 알려졌지만, 벼슬을 하고 있지 않은 한생 삶이 비극적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용궁부연록」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황해도 개성이다. 높이 솟아 있어 하늘이 만지는 산 ‘천마산’이라 부르는 곳 가운데 ‘박연 폭포’가 있다.
옛날부터 이곳에 이상하고 신령스러운 용왕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와, 나라에서 해마다 커다란 소를 잡아 용왕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고려 때 한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까지 이름이 유명하였다.
하루는 한생이 해가 저물 무렵 방에서 편안히 앉아 있는데, 홀연히 푸른 저고리를 입은 두 사람이 공중에서 내려오더니 엎드려 말하였다.
“박연에 계신 용왕신이 모셔 오라고 하였습니다.”
용왕은 한생을 백옥으로 만든 의자에 앉기를 청하였으나, 한생은 굳이 사양하였다. 용왕은 “오랫동안 선생의 명성을 듣다가 이제야 만나게 되었소.” 하면서 사양하지 말아 주길 청하였다. 한생은 서너 번 사양한 뒤에 자리에 앉았다. 용왕은 시집갈 딸을 위해 별당을 짓고 ‘가화각’이라고 할까 하는데, 상량문을 짓지 못했다고 하면서 상량문을 지어 줄 것을 청하였다.
“집 지을 준비는 모두 갖추었는데, 아직 상량문만 준비하지 못했소. 소문을 들으니 선생의 글 짓는 재주가 온갖 사람 중에 으뜸이라고 하여, 특별히 멀리서 모셔 왔소. 그러니 글을 하나 지어 주시면 좋겠소.”
상량문은 집을 짓는 과정 중 대들보를 올릴 때 이를 축하는 글이다. 한생은 용왕이 상량문을 부탁할 정도로 글이 뛰어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별슬을 하지 않는 초야의 서생일뿐이다.. 한생이 글을 다 써서 용왕에게 바치자, 용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조강신, 낙하신, 벽란신 등도 돌려보고 감탄하며 칭찬하였다. 용궁에 잔치가 벌어지고 한생은 신들과 더불어 노래와 춤을 즐겼다. 신들은 서로 시를 지어 보여 주고 노래하였다.. 한생도 지를 지어 바치자, 모두 감탄하고 칭찬하였다. 용왕이 감사해하면서 말하였다.
“이 시를 마땅히 쇠와 돌에 새겨 보물로 삼겠소.”
한생이 절하고 앞으로 나아가 용왕에게 말했다.
“용궁의 좋은 일들은 많이 보았습니다. 커다란 궁궐과 널따란 땅도 둘러볼 수가 있겠습니까?”
용왕이 말하였다.
“그리하시오.”
한생은 용왕의 허락을 받아 용궁을 구경하고 돌아올 때, 용왕이 산호 쟁반에다 진주 두 알과 흰 비단 두 필을 담아서 주었다.
한생이 방문 밖에 나와서 하늘을 보았더니 커다란 별이 드문드문 보였다. 재빨리 품속을 더듬어 보는데 정말로 진주와 비단이 있었다. 한생은 이 물건들을 비단 상자에 넣어 귀한 보물로 여기면서 남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그 뒤에 한생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유명한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찌 되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한생은 신들도 감탄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오세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 재능이 세상에 쓰이지 못한 김시습의 삶과 닮아있다. 용왕이 준 진주와 비단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놓고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한생에게는 귀한 보물이 있는 것이다. 이상적 공간인 용궁과 현실 공간이 대립하고 있다. 용궁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만, 현실에서는 장롱 속에 감추어진 보화일 뿐인 것이다. 그 이유는 한생이 세상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천재가 세상밖으로 나오게 하기에는 너무 부족했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금오신화』 김시습 대교 소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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