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성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남자와 여자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다릅니다. 1930년도 강원도 산골 소녀와 소년은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요?
1. 작가 김유정
김유정은(1908~1937)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소낙비」가 중앙일보에 「노다지」가 각각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2년 동안 30여 편의 작품들을 남겼다.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현실을 그려냈다. 특히 작품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투리나 비속어 등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어 재미를 더해 준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무지나 어리석음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면에 그들의 비참한 삶과 현실로 이어져 슬픔이 배어나게 한다. 이는 해학과 비애를 동시에 드러내는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봄봄」 「소낙비」 「산골나그네」 「만무방」 「땡볕」 「금 따는 콩밭」 등이 있다.
2. 점순이는 왜?
점순이는 ‘나’에게 “얘, 너 혼자만 일하니?” 하고 말을 걸었다. 이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럼 혼자 하지 떼루 하리?”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나’는 점순이와 대화하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이유는 열일곱씩이나 된 것들이 붙어 다니면 동리에 우스운 소문이 날까 봐 어머니께서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점순이랑 ‘나’가 붙어 다니다가 일을 내면 점순이네 부모님이 노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땅도 떨어지고 동네에서도 내쫓기게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 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 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
"난 감자 안 먹는다. 니나 먹어라.”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일하던 손으로 그 감자를 도로 어깨너머로 쑥 밀어 버렸다.
점순이는 맛있는 봄 감자를 ‘나’에게 주면서 호감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느 짐인 이거 없지?” 하는 것은 점순이네는 마름이고 그 손에 배재를 얻어 붙이는 ‘나’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나’의 집은 점순이네의 도움으로 동네에서 살고 있으므로 점순이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화가 난 점순이는 ‘나’가 나무를 짊어지고 내려오는 길목에서 닭싸움을 붙여 놓고 “이놈의 닭! 죽어라, 죽어라.”하고 볼기짝을 주먹으로 콕콕 쥐어박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듯한 음성으로,
“이 바보 녀석아!”
“얘! 너 배냇병신이지?”
그만도 좋으련만,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생략)
욕을 먹으면서도 대거리를 못하는 ‘나’는 분하여 두 눈에 눈물까지 흘렸다. 화가 난 ‘나’는 닭에게 고추장을 먹여 싸움을 붙여 보았지만 한 번 면상을 쪼고는 기세에 눌리는 것이다. 이를 보고 '나'의 닭을 잡아다 고추장을 더 먹였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여 뻐드러지고 말았다. 그런 닭을 점순이가 또 쌈을 붙여 놓은 것이다. 그리고 호들기만 불고 있었다.
'나는 대뜸 달려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큰 수탉을 단매로 때려 엎었다.'
......(생략)
’나‘는 닭을 죽이고 얼김에 엉하고 울음을 울어 버렸다. 17살씩이나 먹은 장정이 소리내어 엉하고 우는 모습에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다. 닭이 쌈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서 고추장을 먹이는 행동이나, 화가 나 닭을 죽이고는 엉하고 울어 버리는 행동은 17살씩이나 먹은 장정이 하기에는 좀 생뚱맞기 때문이다.
점순이가 다가와서 “그럼 너 이담부턴 안 그럴 테냐?” ’나‘는 뭘 안 그러는지도 모르고 “그래”라고 답한다.
그리고 점순이가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쓰러져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
점순이의 적극적인 행동과 달리, ’나‘의 소심하고 소극적인 행동은 독자로 하여금 재미를 느끼게 한다. 남자는 적극적이고 용감하다는 우리의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있다. ’나‘는 동백꽃 속으로 파묻히면서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있다. ’나‘의 무지가 우스우면서도 안쓰럽다.
4. 점순이 사랑에 대한 조언
만약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려 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기술, 예를 들면 음악이나 그림, 건축이나 공학의 기술을 배울 때 시작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을 밟아야만 할 것이다.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누구나 사랑에 실패할 때가 있다. 하지만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와 기술을 배운다면 사랑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소극적인 사람이다. 점순이네 도움으로 소작을 붙여 살아가는 ’나‘는 점순이의 마음을 알았다 하더라도 조심스러울 수 있다. 점순이가 ’나‘의 상황과 형편을 배려한다면 “느 집에 이거 없지”하는 식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나‘의 성격을 고려했다면, 잘한다고 응원을 해주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점순이는 자기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러 진짜 자신의 마음과는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까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의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상대방의 기분을 빨리 알아채고, 상황이 어떠한지 생각하고, 반응을 살펴야 한다. 상대방이 감정을 몰라준다고 욕을 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동백꽃」에서 점순이가 기다리기만 했더라면, 사랑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좀 서툴게 표현했더라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사랑을 이룰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