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논술

민옹전 박지원

by 연채움 2024. 9. 27.
반응형

  「민옹전1757년 박지원이 실존 인물인 민유신이 죽은 뒤에 그가 남긴 몇 가지 일화와 작가 박지원이 민유신을 만나 겪었던 일들을 엮은 전기이다. 민옹전을 글자 그대로 풀면 ‘‘민 가 노인의 전기이다. 하지만 은 민가 성을 의미하지만, 백성 민벼슬을 하지 않는 백성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민 노인 이야기

  민 노인은 경기도 남양에 살았다. 무신년에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참여하여 공을 세워 종삼품에 해당하는 첨사 벼슬을 얻었다. 이인좌의 난은 1728(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 과격파와 남인 일부가 연합에 무력을 정권을 빼앗으려 일으킨 난이다. 이후 민 노인은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민 노인은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글을 잘하였다고 한다. 민 노인은 매일 훌륭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으며 훌륭한 인물들의 발자취를 닮고 싶어 했다.

 

일곱 살이 되자, 방의 벽에다 큼지막하게 이렇게 썼다.

항탁이 스승이 되었다.”

항탁은 겨우 일곱 살의 어린아이였을 때 이미 성인이던 공자를 만나 문답을 했는데, 공자가 크게 깨우침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생략)

열두 살이 되자, 이렇게 썼다.

감라가 장수가 되었다.”

감라는 춘추 시대 진나라 사람인데, 불과 열두 살 나이로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진나라에 다섯 개의 성을 바치게 한 인물이다.

열세 살이 되자, 이렇게 썼다.

외항의 어린아이가 항우를 설득하였다.”

(생략)

이렇듯 해마다 새롭게 다짐하며 큰 포부를 잃지 않던 민 노인이었으나 좀처럼 운이 트이지 않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그의 나이 마흔이 되었다. 그해에도 민 노인은 글을 적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맹자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었다.”

(생략)

이렇게 해마다 글씨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아 벽이 온통 까마귀처럼 시커멓게 되었다.

일흔 살이 되자, 민 노인의 아내가 민 노인을 놀리며 말했다.

여보, 금 년에는 까마귀 안 그리오?”

민 노인은 기꺼하며 맞장구를 쳤다.

, 그려야지. 빨리 먹을 갈아 주구려.”

그러고는 큼직하게 썼다.

항우의 모사인 범증이 기묘한 계책을 좋아하던 나이이다.”

이때 아내가 발끈 화를 내며 말하였다.

당신의 꾀가 아무리 기묘하다고 한들 앞으로 써보기나 한단 말이우?”

(생략)

 

  서술자 는 갑술년(1754)에 나이 열여덟 살에 우울증을 앓아 마음이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나는 민 노인을 초대했다. 민 노인이 왔을 때 사람들과 연주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민 노인이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다짜고짜 퉁소부는 사람의 따귀를 갈기었다. 그러고는 주인은 즐거워하는데 너는 왜 잔뜩 찌푸린 표정이냐?” 하였다. 민 노인은 퉁소를 부느라 힘을 주고 있던 사람을 놀리려 한 것이다. ‘는 껄껄 웃었다. 민 노인이 그렇게 한 것은 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손님을 불러다 놓았으면 마땅히 손님에게 음식을 권해야 하는 법이거늘 어쩌자고 자네는 혼자서만 음식을 맛본단 말인가? 나를 대우하는 도리가 아니군.”

나는 얼른 사과하고 민 노인의 소매를 잡아 다시 앉혔다. 그러고는 서둘러 민 노인의 밥상을 차려 오게 했다. 민 노인은 사양치 않고 팔을 훌훌 걷어붙이더니 수저를 달그락거리며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자, 나도 갑자기 입에 침이 고이면서 마음이 뚫리고 코가 벌름거려져 곧 예전처럼 밥을 먹게 되었다.

(생략)

 

민 노인은 에게 책 외우기 내기를 하자고 하였다.

 

 “나는 다 외웠네.”

나는 아직 한 번도 읽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안이 벙벙하여 민 노인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민 노인이 자꾸 재촉하는 바람에 외우는 일이 더디어졌다. 나는 더욱 외워지지 않고 졸리기만 해, 어느새 잠들고 말았다.

우울증으로 잠으로 못 자고, 밥맛이 없어 밥을 먹지 못하던 는 민 노인의 지혜로운 행동으로 인해 밥도 먹고 잠도 잔 것이다. (생략)

 

어르신도 무서워하는 게 있어요?”

민 노인은 한참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서 말하였다.

나 자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어. 내 오른 눈은 온갖 조화를 부리는 용이요, 왼 순은 거칠 것 없는 호랑이지. 혀 속에는 날카로운 도끼가 감추어져 있고 구부린 팔은 바로 활이야. 내가 마음을 잘 자지면 어린아이 같이 착하지만, 까딱만 잘못해도 오랑캐가 될 수 있어. (생략)”

 

이런 조그만 벌레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내가 보기에는 종로 거리를 가득 메우고 다니는 것들이 모두 황충이야. 키가 전부 칠 척쯤 되는 데다 머리는 새까맣고 눈은 반들거리지. 주먹도 드나들 만큼 큰 입으로 뭐라 지껄여 대고, 떼 지어 다니느라 발굽이 서로 닿고 궁둥이가 부딪치기도 하지. 그 바람에 농사를 해치며 곡식을 짓밟곤 하니 이것들보다 못된 벌레가 없더. 내가 이것들을 잡고 싶은데 큰 바가지가 없는 게 한이야.”

(생략)

이듬해에 민 노인은 세상을 떠났다. 민 노인은 별나고 호탕했지만, 성품은 깨끗하고 정직했으며 착한 일을 즐겼다. 주역에 밝았고 노자의 말을 좋아했으며 읽지 않은 책이 없다고 한다. 그 두 아들이 모두 무과 시험에 합격했으나 아직 벼슬은 없다.

(생략)

 

  ‘는 다시 민 노인을 만나고 싶어 했으나 민 노인을 만날 수 없었다. ‘민옹전을 쓰는 이유로, 민 노인과 함께 나눈 은어며 우스갯소리며 재담이며 꼬집는 말들을 모아 엮었다고 한다. ‘민옹전을 쓴 나이가 정축년(1757) 스물한 때라고 밝히고 있다. ‘는 작가 박지원이다. 작가 박지원이 민 노인의 입을 빌려하는 말들은 오늘날에 비치어 보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의 백성 눈에 위정자들은 벼멸구나 다름없는 벌레로 보였다. 그러면 오늘날 위정자들은 어떨까?

728x90
반응형

'독후논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덕 선생전  (10) 2024.10.08
금따는 콩밭 김유정  (2) 2024.10.05
남염부주지 『금오신화』  (2) 2024.09.20
용궁부연록 『금오신화』  (0) 2024.09.19
취유부벽정기 『금오신화』  (2) 202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