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덕 선생 전」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 소설이다. 형식은 선귤자 이덕무와 제자 자목과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다. 예덕 선생의 ‘예’는 ‘더럽다’는 뜻이고, ‘덕’은 ‘훌륭한 자질’ 즉 ‘덕성’을 뜻한다. ‘예덕 선생’ 엄 행수는 똥거름을 쳐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선생’이라 불릴 만큼 인품이 훌륭하다는 것이다.
「예덕 선생전」 이해
농사가 중요 산업이었던 조선에서는 똥과 오줌은 아주 중요한 거름이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서울 같은 곳에서 똥과 오줌을 거두어다가 팔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엄 행수가 한 일이 그 일이다.
선귤자 이덕무에게는 예덕 선생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예덕 선생은 날마다 마을의 똥거름을 쳐내는 일을 하며 먹고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엄 행수라고 불렀다. 행수란 막을 하는 늙은이를 부르는 말이고, 엄은 그 성이었다. (생략)
자목이란 제자가 선귤자에게 따졌다.
“예전에 스승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지요. 친구란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나지 않은 형제라고요. (중략) 저 엄 행수란 자는 마을에서 제일 천한 사람으로 막노동을 하는 가장 낮은 신분이라 함께 다니기조차 부끄러운 자입니다.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그 덕을 자주 칭찬하여 선생이라고까지 부르고 장차 사귀어 친구가 되려고 하십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이 너무 부끄러워 이제 스승님을 곁을 떠나고자 합니다.”(생략)
자목이 엄 행수를 ‘선생’이라 칭하고 친해지려는 선귤자에게 따지면서 그런 스승님이 부끄러워서 떠나겠다고 한다.
“ 그렇다면 네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 만하구나. 대개 장사치들은 이익을 위해서 사귀고, 양반네들은 체면을 따져서 아첨으로 사귄단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세 번 손을 내밀어 아쉬운 소리를 하면 사이가 멀어지기 마련이고, 아무리 오래된 원한이 있더라도 세 번만 도와주면 친해지기 마련이지. 그러므로 이익을 바탕으로 사귀거나 아첨을 바탕으로 사귀면 그 우정이 오래가지 못한단다. (생략)
저 엄 행수란 분은 지금까지 한 번도 나더러 자기를 알아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단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이분을 칭찬하고 싶어 못 견디겠구나. 이분은 밥 먹을 때는 꿀떡꿀떡 삼키고, 나다닐 때는 조심조심 걸으며, 잠은 물쿨 잔단다. 웃을 때는 껄껄 웃고, 가만히 있을 때는 우둔해 보이지. 흙벽을 쌓아 짚을 덮은 움막에 구멍을 뚫은 다음, 들어갈 때는 새우등처럼 구부리고 잘 때는 개처럼 주둥이를 파묻는단다. 아침이면 유쾌한 마음으로 일어나 발채를 짊어지고 마을을 들어와 똥거름을 치우지. (중략)
왕십리의 무, 살곶이 다리의 순무, 석교의 가지, 오이, 수박, 호박, 연희궁의 고추, 마늘, 부추, 파, 염교, 청파동의 미나리, 이태원의 토란 같은 것은, 가장 좋은 밭에서 가꾸고 있는데 모두 엄 행수의 똥거름을 사용하고 있단다. 땅이 기름지고 살져 일 년 육천 냥을 벌어들이고 있어.
하지만 엄 행수는 아침이면 밥 한 그릇을 비우고는 기분 좋아하다가 저녁이 되면 또 밥 한 그릇을 비울뿐이야.. 누가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면 사양하면서 이렇게 말한단다.
‘목구멍을 내려가면 채소나 고기나 배부르기는 매한가지인데, 어찌 입맛을 따질 필요가 있겠소?’
또 누가 좋은 옷을 입으라고 권하면 손을 내저으며 말하지
‘소매가 넓은 옷은 몸에 맞지 않는 데다, 새 옷을 입으면 똥을 지고 다닐 수가 없지요.’
그래도 설날 아침이면 갓을 쓰고 띠를 둘러 웃옷을 입고 새 신발을 신고서는 이웃 마을에 두루두루 세배를 다니지. 그리고 돌아와서는 다시 헌 옷으로 바꿔 입고 발채를 지고 마을에 들어간다고 하니, (중략)
그러고 보면 깨끗해 보여도 깨끗하지 못한 것이 있고, 더러워 보여도 더럽지 않은 것이 있단다. (중략)
세상에 선비로 태어나서 곤궁하고 힘든 빛이 얼굴에 드러나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때를 만나 출세한 뒤 거드름을 피운다면 이것도 창피한 일이다. 이런 사람 가운데 저 엄 행수를 보고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을 없을 게야. 그래서 나는 엄 행수를 선생이라 부르는 것이란다. 어떻게 내가 감히 그를 친구라고 부르겠느냐? 내가 엄 행수를 감히 이름으로 부르니 못하고 ‘더러움 속에 덕을 감추었다.’는 뜻으로 ‘예덕 선생’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있단다. 알겠니?”
선귤자 이덕무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다, 그는 경서(經書)와 사서(四書)에서부터 기문이서(奇文異書)에 이르기까지 아는 것이 많고 문장에도 뛰어났지만, 서자였기 때문에 벼슬길에는 제약이 많았던 인물이다. 작가 박지원은 학문이 뛰어났지만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하는 이덕무를 내세워 신분제도를 비판하고, 이덕무의 말을 빌려 양반의 허례를 풍자하고 있다.
선비 자목은 똥거름 만드는 일을 하는 엄 행수를 업신여겨 떠나겠다고 말한다. 조선에서는 그 일을 천민이나 하는 천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는 산업이나 백성들은 의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었던 것 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양반 선비라고 하는 사람들은 허례허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오늘날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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