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처」는 1921년 『개벽』에 발표하였다.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나’가 아내와 주변인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듯이 서술하는 사실주의 경향의 단편 소설이다.
1. 등장 인물
서술자는 ‘나’ K이다. ‘나’가 아내를 비롯한 주변 인물을 관찰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듯이 서술한다. ‘나’의 아내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무명작가인 ‘나’에게 시집와서 가난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나는 유심히 그와 아내를 번갈아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은 분간을 못 하리만큼 그들의 얼굴은 혹사하다.
그런데 얼굴빛은 어쩌면 저렇게 틀리는지? 하나는 이글이글 만발한 꽃 같고 하나는 시들시들 마른 낙엽 같다. 아내를 형이라 하고,, 처형을 아우라 하였으면 아무라도 속을 것이다. 또 한 번 아내를 보며 말할 수 없는 쓸쓸한 생각이 다시금 가슴을 누른다.
‘나’의 아내와 대조되는 인물은 처형이다. 처형은 남편이 기미로 한몫 잡아 부유한 삶을 살지만, 얼굴에 난 남편이 폭력을 쓴 흔적을 감추지는 못한다. 주변 사람들에 의해 '나'와 비교되는 인물은 T이다. T는 ‘나’와 동년배로 한성은행에 다닌다. 친척들에 의해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 애는 돈푼이나 모을 거야!”라는 평을 듣는 인물이다.
2. 내용
이야기는 어느 비 오는 봄밤 아내가 전당포에 잡힐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데서 시작한다.
“그것이 어째 없을까?”
아내가 장문을 열고 무엇을 찾더니 입안말로 중얼거린다.
“무엇이 없어?”
나는 우두커니 책상머리에 앉아서 책장만 뒤적뒤적하다가 물어보았다.
“모본단 저고리가 하나 남았는데…….”
그러나 모본단 저고리를 찾던 아내는 벌써 전당포에 잡힌 것을 기억해 낸다. 비 내리는 봄밤이라는 배경이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나의 마음이 쓸쓸하고 처량하다는 것을 표현해 준다.
봄은 벌써 반이나 지났건마는 이슬을 실은 듯한 밤기운이 방구석으로부터 슬금슬금 기어 나와 사람에게 안기고, 비가 오는 까닭인지 밤은 아직 깊지 않건만 인적조차 끊어지고 온 천지가 빈 듯이 고요한데 투닥투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한없는 구슬픈 생각을 자아낸다.
“빌어먹을 것 되는 대로 되어라.”
낮에 T가 자신의 아내에게 줄 양산을 가지고 와 ‘나’의 아내에게 보인날 저녁 아내는 “당신도 살 궁리를 좀 하셔요.”라고 말한다.
나는 또 ‘시작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머리에 번쩍이며 불쾌한 생각이 벌컥 일어난다. 그러나 무어라 대답할 말이 없어 묵묵히 있었다.
“우리도 남과 같이 살아 보아야지요?”
아내가 T의 양산에 단단히 자극을 받은 것이다. 예술가의 처 노릇을 하려는 독특한 결심이 있는 그는 좀처럼 이런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아니하였다..
(중략)
이번에도 ‘그럴 만도 하다’는 동정심이 없지 아니하되 또한 불쾌한 생각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잠깐 있다가 불쾌한 빛을 드러내며,
“급작스럽게 살 도리를 하라면 어찌할 수가 있소. 차차 될 때가 있겠지!”
(중략)
“막벌이꾼한테나 시집을 갈 것이지 누가 내게 시집을 오랬어! 저따위가 예술가의 처가 다 뭐야!”
사나운 어조고 몰풍스럽게 소리를 꽥 질렀다.
‘나’는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는 여린 아내가 ‘내일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옷을 찾는 아내의 심중을 생각하니’ ‘ 굵었다 가늘었다.’ 밤공기를 적시는 빗소리처럼 ‘나’의 마음은 처량하다. 장인어른의 생신 잔치에 참여한 '나'는 못 먹는 술을 넉 잔이나 마셨다. 장모는 인력거를 불러 주는데 취중에서 ‘인력거를 부르지 말고 그 인력거 찻삯을 나를 주었으면’하는 생각을 한다.
어제 일이 있은 후로 우리 사이에 무슨 벽이 생긴 듯하던 것이 그 벽이 점점 엷어져 가는 듯하며 가엾고 사랑스러운 생각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오늘 장인 생신 잔치로부터 처형 눈 위에 멍든 것에 옮겨 갔다.
처형의 남편은 돈을 번 후로 기생을 얻어 걸핏하면 처형을 친다고 하였다.
“그것 보아! 돈푼이나 있으면 다 그런 것이야.”
“정말 그래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도 의좋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야요.”
아내는 충심으로 공명해 주었다. 이 말을 들으매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만족해지며 무슨 승리자나 된 듯이 득이 양양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옳다, 그렇다. 이렇게 지내는 것이 행복이다.’
이틀 뒤에 처형이 비단과 신을 사들고 찾아왔다. ‘나’는 아내에게 신 한 켤레 사주지 못하는 마음이 쓸쓸하였지만 불쾌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어서 출세를 하여 비단 신 한 켤레쯤은 사 주게 되었으면 좋겠으련만…….”
아내가 이런 말을 듣기는 참 처음이다.
“네에?”
아내는 제 귀를 못 미더워하는 듯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 오르며,
“얼마 안 되어 그렇게 될 것이야요.”
‘나’는 무명작가인 자신을 알아주는 아내가 고마워 ‘아아, 나에게 위안을 주고 도움을 주는 천사여!’라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으며 아내를 안았다. ‘나’는 물질 앞에서 초라함을 느끼면서도 물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3. 의의
「빈처」 1920년대 단편 소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작품이다. 또한 “그것이 어째 없을까?” 하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부분은 예전의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것이다. 작가는 물질적 가치를 따지는 인물들과 대조하면서 정신을 추구하는 젊은 지식인 부부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