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논술

역사의 아침을 밝힌 고대 문명 이야기

by 연채움 2024. 1. 18.
반응형

문명사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문명의 발생 이후 고대인들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문명의 발당과 고대인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1. 문명과 문화의 개념

  문명이란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에 대비해 발전된 삶의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인류가 이룩한 모든 발전을 뜻한다. 물질적 발전과 사회적인 발전이 모두 이 속에 속한다. 다만, 인류의 정신적인 발전은 보통 문명에 포함되지 않고 문화의 개념이다.  문화는 추상적인 정신 개념이다. 예를 들자면, 농사를 짓는 행위 자체는 문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농업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기구를 쓴다거나 관개 시설을 세운 것은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여 많은 지식을 남긴 것은 문화라고 볼 수 있지만, 발명된 문자 자체는 문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가 남긴 여러 흔적 중에서 문명이나 역사를 구별해 내는 첫 번째 기준이 문자이다.

 

2. 문명 이전의 삶

  구석기시대에는 동굴에서 살면서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를 사용하였다.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나무 열매나 풀뿌리를 채집했다. 종교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많은 짐승이 잡히기를 비는 의미에서 동굴에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근처에 나무 열매와 짐승들이 줄어들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 했다. 신석기시대에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되면서, 한 곳에 정착하여 움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또 강가에 살면서 고기잡이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씨족이고 서로 평등하했다. 돌을 갈아 다듬은 간석기를 사용하고, 남은 음식을 저장하거나 조리하기 위해 토기를 만들었다.

 

3. 4대 문명을 통해 알 수 있는 문명사회 특징

  최초로 문명이 발생한 곳은 유프라테스강 일대와 이집트의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과 황하강 유역에서 문명이 생겨났다. 4대 문명은 큰 강 유역의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래서 관계시설을 만들고 홍수를 예측하기 위한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달력도 발명되었다. 이집트인들을 태양력과 10진법을, 메소포타미아인들을 태음력과 60진법을 발명하였다. 또한 문자를 사용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 페니키아의 표음 문자 등 당시 문자는 신전이나 왕실에 관한 기록을 하거나, 세금 관계를 기록할 때 또 점을 쳐서 그 결과를 신에게 물어볼 때 주로 사용하였다. 그중 페니키아 문자는 무역 활동을 위해서 여러 지역 상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4. 문명의 발달로 변화한 고대인들의 삶

  첫째 천문학, 기하학 등을 이용해서 자연현상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게 되었다. 수메르인들은 1시간은 60분으로 1분은 60초로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하였다. 수메르인들의 대표적 유적 가운데 하나가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이다. 이 제단으로 인해 하늘과 가까워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천문학이 발달할 수 있었다.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달력도 발명되어 태양이 움직임에 따라 기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시간을 측정하는 태양력을 황화 문명권에서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함께 파악하는 태음력을 사용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처음부터 태음력을 썼다. 이로 인해 씨앗을 언제 뿌려야 할지, 수확물을 언제 거둬야 할지를 계획하고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이집트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바위가 필요했다. 바위를 운반하고 다시 피라미드를 위에 얹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지렛대를 사용하였다.  이때 이용한 것이 지렛대의 원리이다. 나일강의 범람이 때로는 지형을 바꿔버렸다. 이때 이 지형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기하학이 발달하였다.

  둘째 엄격한 신분제 사회로, 왕과 귀족은 지배층이 되었고, 평민과 노예는 피지배층으로 거대 건축물을 짓는 노역을 담당하거나 정복 전쟁의 희생물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정복당한 국가의 백성들은 노예가 되었다. 숫적으로 많은 노예나 평민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왕이나 귀족들은 무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신분 질서 유지하기 위한 법률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은 메소포타미아 도시국가들이 만든 우르남무 법전과 함무라비 법전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로니아 왕 함무라비가 만든 것으로, 1901년 발견되었다. 함무라비 법전에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조항이 있다. 이 말은 신분에 따라 평등하다는 뜻이다. , 같은 신분인 귀족이 귀족을 해치면 이 정신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되지만, 귀족이 노예를 해치면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반대로 노예가 귀족을 다치게만 하더라도 사형에 처해졌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고대 법전은 평등의 정신을 구현하기보다는 계급구조를 유지를 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문자의 사용으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쐐기문자를 사용했고, 이집트에서는 신성 문자라고 불리는 상형 문자를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황화 문명권에서는 갑골 문자를 인더스 지역에서는 인장 문자를 사용하였다. 고대 인류는 잉여생산물, 신전에 바치는 제물,  등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가 발명되었다.

  잉여생산물은 교역의 발달로 이어졌다. 남은 식량을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생활용품과 바꾼 것이다.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교역량도 늘어났으며, 교역을 위해서 수레와 배 같은 교통수단도 발명되었다. 교역이 활발해지니까 어느 지역에 얼마만큼의 물품을 팔았는지를 기록할 필요도 있었다. 문자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기록할 수 있었다.

 

  글 김상훈. 한솔교육 플라톤 

JUMP CAMP 세계사과정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