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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논술

레미제라블

by 연채움 2024.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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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소개

  빅토르 위고(1802~1885)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이다. 프랑스 동부 브장송에서 태어나 어려서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에스파냐 등에서 자랐으나 부모님이 별거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옮겨 교육을 받았다. 빅토르 위고는 일찍부터 문학에 재능을 보여 1819년, 툴루즈의 문화 아카데미 콩쿠르에서 1등 상을 받기도 했다. 시집 등을 내어 호평을 받았다.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을 지지해 혁명의 젊은 영웅을 찬양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184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1845년 상원의원, 18482월 혁명 때 공화정 의원에 선출되어 루이 나폴레옹의 대통령 취임에 힘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뒤 나폴레옹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를 반대하다가 국외로 추방되어, 이후 19년에 걸쳐 고국을 떠나 망명 생활을 했다. (대교소빅스 출판, 빅토르 위고 약력 참조)

  위고는 소꿉친구인 아델 푸셰와 결혼한 해에 낸 첫 시집오드(1822)로 주목받았고, 희곡크롬웰(1827)과 시집동방시집(1829)을 간행하고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크롬웰은 고전주의 연극의 신조였던 이른바 ‘삼일 치의 법칙’(행위, 시간, 장소의 통일)을 과감히 깨트린 작품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희곡 에르나니(1830)는 객석에서 고전주의자와 낭만주의자가 저마다 야유와 박수를 보내는 대소동의 와중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소설파리의 노트르담(1831)은 소설가로서 위고의 명성을 확고히 해 주었다. 정관시집(1856) 세기의 전설(1859), 레미제라블(1862),바다의 노동자(1866), 웃는 남자(1869) 등이 연이어 간행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2. 비참한 사람들 유형

  첫째는 테나르디에와 그 가족들이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몽페르메이유라는 곳에서 여인숙을 겸한 싸구려 음식점을 경영하던 사람이었다. 코제트를 데리고는 일을 할 수없었던, 팡틴느는 코제트를 테나르디에에게 맡겼다. 코제트를 맡은 테나르디에 부부는 코제트에게 필요한 돈이라고 하면서 팡틴느에게 돈을 뜯어 낸다. 그러나 팡틴느가 보내준 돈은 코제트에게 쓰이지 않았고, 오히려 어린나이에 새벽에 물을 길어오게 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를 걸치고 추위에 덜덜 떨면서 곱은 손으로 빗자루를 들고 해도 뜨기 전부터 길을 쓸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테나르디에 부부는  팡틴느에게 요구하는 돈이 점점 많아졌다.  팡틴느는 돈을 보내기 위해 앞니까지 뽑아서 팔기까지 했다.

  세월이 흘러 코제트가 테나르디에 가족을 다시 만났을 때에도 여전히 야비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돈을 구걸하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 사람에게 감사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뜯어 낼 수 있을까 연구하고 더 비참해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고 연기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테나르디에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딸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둘째는 팡틴느와 코제트이다. 팡틴느는 대학생과 사랑에 빠져 코제트를 낳았지만 버림을 받았다. 팡틴느는  코제트를 테나르디에게 맡기고, 마들렌의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 테나르디에게 돈을 보낸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행실이 나쁘다는 이유로 공장에서 쫓겨난다. 테나르디에의 계속되는 요구에 생이까지 뽑아서 돈을 보내지만 그 돈은 코제트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 장발장을 만나 도움을 약속받았지만 결국 팡틴느를 보지 못하고 죽었다. 

  장발장은 이런 코제트를 구해 주고 양녀를 삼았다. 장발장은 헌신적으로 코제트를 돌보았다. 후에 마리우스와 결혼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 코제트의 삶은 장발장을 만나면서 더 이상 비참한 사람이 아니었다. 

  셋째는 장발장이다. 장발장은 라 브리 지방의 가난한 농가에서 내어나, 글도 배우지 못하며 자랐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은 후 몸조리를 잘 못해서 죽고, 아버지는 나뭇가지 치는 일을 하다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장발장은 하나밖에 없는 누이의 손에서 자랐다. 누이는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는 과부였다. 장발장은 가장이 되어 누이와 일곱 명의 조카를 돌봐야 했다. 혹독한 겨울 장발장은 빵을 훔치고 붙잡혔다. 밀렵한 것까지 더해져 5년 형을 받았다. 장발장은 4번의 탈옥으로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감옥에서 나왔을 때 아무도 재워 주지도 먹을 것을 팔지도 않았다.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도움으로 따뜻한 음식을 먹고 하룻밤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은그릇을 훔쳐 달아났다. 그런 장발장을 미리엘 주교는 은촛대까지 주면서 용서해 주었다. 은그릇과 은촛대를 판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라는주교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 비록 장발장이라는 이름이 아닌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살았지만 미리엘 주교님이 주신 것은 은그릇과 은촛대 그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에 코제트에게도 "저 은촛대는 이 못난 아버지를 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 소중한 보물이란다. 너도 은촛대를 간직하며 항상 사랑이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3. 생각해 볼까요?

· 장발장은 왜 미리엘 주교의 은그릇을 훔쳤을까요?

· 마들렌은 왜 시장직을 사양하려고 했을까요?

· 미리엘 주교는 왜 은촛대까지 주었을까요?

· 장발장은 왜 밟고 있는 동전을 확인한 후에 눈물을 흘렸을까요?

· 장발장은 왜 끝까지 은촛대를 팔지 않았을까요?

· 장발장은 왜 법정에 가서 자신이 장발장이라고 했을까요?

 

5. 장발장을 처벌해야 할까?

  장발장은 법정에 가서 자신이 장발장임을 고백하여서 다시 감옥에 가게 된다.  왜 다시 감옥에 가게 되는 걸까?  장발장은 감옥에서 나온 후에 자신을 도와준 밀리엘 주교의 은그릇을 훔치고, 어린 소년의 돈 40수를 빼앗았다. 또한  노란 통행증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신분을 속이고 마들렌으로 살았다.  그러나 밀리엘 주교의 은그릇을 훔친 것은 이미 용서를 받았고, 마들렌 시장으로 살면서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감옥에 가는 장면에서 알 수 없는 혼돈을 느끼고, 빨리 코제트를 구하려 가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다시 감옥에 간 장발장은 이제는 정말로 탈옥을 해 코제트를 구하고 숨어서 살았다. 코제트가 마리우스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시민군에 찾아간 장발장은, 전쟁터에서 마리우스를 구했다. 마리우스를 구한 사람이 장발장인 것이 테나르디에에 의해 밝혀 저, 코제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코제트가 결혼 후 자신이 마리우스에게 장발장임을 고백해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떠나게 했었다. 코제트가 떠나고 1년도 안되어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아 코제트와의 이별이 장발장에게 어떤 의미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아마도 장발장이 받은 형벌 중 가장 혹독 했을 것이다. 코제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마리우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뜯어 내기 위해 찾아간 테나르디에 때문인 것은 아이러니이다.  

 

(한솔 교육 주니어 플라톤 5학년 교재, 대교소빅시 출판)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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