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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논술

양반전 박지원

by 연채움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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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전」은 당시 양반 자리가 거래되고 있는 사회 현상을 알 수 있다.  박지원이 살았던 (1737~1805)는 이미 신분제도가 붕괴되고 있지만 여전히 신분에 매여 있는 양반들의 모습을 비판하면서 현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1. 조선의 신분제도

   조선의 신분제도는 백성들을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양천제도이다. 양인은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조세와 군역 등을 담당하는 자유민이었다. 천민은 개인이나 국가에 소속된 비자유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구분하는 신분제도가 정착되었다.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말하며 양반의 가족, 가문을 모두 양반이라 불렀다. 중인은 양반과 상민의 중간 계층으로 좁은 의미로는 기술관만을 의미했다. 상민은 평민, 양인이라고도 불리며, 농업, 수공업자, 상인으로 백성의 대부분이 상민에 속했다. 천민은 노비로 물건처럼 사고팔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양반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첩의 자식인 서얼의 자식은 학식이 높아도 문과를 볼 수 없었다.
   양인이면 누구나 과거를 볼 수 있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생업에 바쁜 상민이 과거를 준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양반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임진왜란 이후 나라에서 모자라는 재정을 채우기 위해 양반 신분과 관직을 돈이나 곡식을 받고 팔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양반의 수는 늘어났고, 신분제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조 때에 이르러 노비와 양인이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가 양인일 경우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자식도 양인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조 때에 이르러서는 도망간 노비를 잡아서 다시 노비 신분으로 만드는 ‘노비추쇄법’이 폐지되었다. 그래서 노비제도는 빠르게 무너져 갔다. 그리고 상민층이 돈을 내고 양반 신분을 사는 일이 많아졌다. 양반이 많아질수록 상민에게 돌아오는 세금이나 군역 부담은 점점 커졌다. 그러한 이유로 상민들은 어떻게 해서든 양반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2. 양반전에 나타난 사회 모습

  군수는 양반이 관곡을 모두 갚았다는 말을 통인에게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 그 형편에 천 석이나 되는 관곡을 어떻게 한꺼번에 갚을 수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위로도 할 겸 궁금증도 풀 겸 몸소 양반을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반은 의관도 갖추지 않고 벙거지에 짧은 잠방이를 입은 채 사립문 밖 땅바닥에 엎드려 “쇤네, 쇤네.” 하면서 군수를 감히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군수는 깜짝 놀라 말에서 뛰어내려 양반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하였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대관절 왜 이러시오?”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양반 자리를 팔아서 관곡을 갚았사옵니다. 이제 저 건넛집 부자가 양반이옵니다. 그러니 어찌 이미 팔아먹은 양반 행세를 하겠나이까?
 

  이 장면을 통해서 상업이나 농업등 다른 일을  열심히 한 상민이 양반들보다 더 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양반의 신분을 사고팔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가난한 양반

  강원도 정선 고을의 양반이 가난하여 관곡을 빌려 먹고 여러 해 동안 갚지 못한 관곡이 천 석이 넘었다. 관찰사가 장부를 보고 몹시 화가 나서 양반을 감옥에 가두라고 하였다.

 
양반 역시 곧 그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밤낮으로 훌쩍훌쩍 울기만 할 뿐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였다.
“당신은 평생 글만 읽더니, 이제는 관가에서 꾸어다 먹은 곡식도 못 갚는구려. 양반. 양반 하더니 참 딱하오! 그놈의 양반이란 것이 한 푼 값어치도 안 나간단 말이오!”
 

  양반은 성품이 어질고 온 고을에 인품이 높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렇지만 가족의 생계를 관곡에 의지하고 있다. 시골의 양반이라는 이름만으로 천 석이나 되는 곡식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천 석이나 빌려 먹을 동안 다른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아내는 이러한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말해 주고 있다.

 

3. 부자 양반을 사다.

  부자는 양반이 곧 붙잡혀 가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식구들을 모두 모아 놓고 의논하였다.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늘 귀하게 대접받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우리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늘 천한 대접만 받는단 말야. 말 한 번 거들먹거리며 타보지도 못하고, 양반만 보면 저절로 기가 죽어 굽실거리며 섬돌 아래 엎드려 절하고, 늘 코를 땅바닥에 대고 엉금엉금 기어야 하니 참 더러운 일이야. 이제 저 건넛집 양반이 관곡을 갚지 못해 곧 붙잡혀 가게 생긴 모양인데, 그 형편에 도저히 양반 자리를 지켜 내지 못할 거란 말이야. 이 기회에 내가 그 자리를 사서 양반 행서를 한번 해 보면 어떨까?”
 

  양반 자리가 거래되었다는 것을 안 군수는 정선 고을 양반들을 모두 불러 양반 거래 증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손에 돈을 만져서는 안 되며, 쌀값을 물어서는 안 되며, 아무리 더러워도 버선을 벗어서는 안 되느니라……(생략)
 

  1차 증서의 내용을 들은 부자는 “양반은 신선이나 다름없다더니, …… 아무쪼록 좋은 쪽으로 잘 좀 고쳐주시오.” 하고 증서의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군수는 부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고쳐 썼다.

 
  하다못해 시골에서 가난한 선비로 살더라도 자기 멋대로 할 수 있으니, 이웃집 소를 빌려 자기 밭을 먼저 갈게 하고, 마을 사람을 불러다가 자기 밭을 먼저 김매게 할 수 있느니라. 만일 어떤 놈이 양반을 업신여기고 말을 듣지 않을 때는 그놈의 코에다 잿물을 들이붓고 상투 꼬투리를 잡아 휘휘 둘리고 수염을 잡아 뽑는다 하더라도 감히 원망할 수 없으니……
 
  새로 고쳐 쓴 증서가 거의 반쯤 되었을 때, 부자는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귀를 꽉 막고 혀를 설레설레 내둘렀다.
“제발 그만! 그만하시오! 양반이라는 것이 참 맹랑하기도 하오 나리님네들은 지름 나를 날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이오?”
 

  부자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이후로는 ‘양반’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양반의 가치관이 ‘날도둑놈’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군수가 고을 양반들을 불러서 양반 거래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당시 양반 사회가 ‘날도둑놈’과 같은 사회라는 것이 아닐까! 무능하고 위선적인 양반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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