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술자 시점은 1인칭 주인고 시점이다. 주제는 소를 통한 부자간의 갈등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특징은 대화와 묘사로 사건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문체는 해학적이고 토속적이다.
동맹이 와 아버지는 소를 돌려주는 것을 두고 갈등을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소를 주인에게 돌려준다. 아버지는 그 결정으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얻게 되는 것일까?
목 차
1. 작가 전성태는 누구인가?
2. 사회문화적 배경과 소의 의미
3. 동맹이네 소가 들어 오다
4. 원칙을 지키는 삶
1. 작가 전성태는 누구인가?
1969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문예 창작과를 졸업했다.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닭 몰이」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매향』『국경을 넘는 일』『늑대』『여자 이발사』『두 번의 자화상』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속에는 힘들고 외롭게 살아가는 농촌의 현실이 담겨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낯설고 신기한 소재나 화려한 표현보다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2. 사회 문화적 배경과 소의 의미
광주와 서울을 오르내리는 비둘기호 열차에서 땅콩 오징어를 파는 일이 그의 직업이었다. 그것도 먼 친척 중에 철도 강생회에 몸담고 있는 이가 있었는데, 그이가 강생금을 밀어 넣고 세 해나 기다려서 겨우 얻은 자리였다.
심심풀이 땅콩 오징어를 팔았지만, 사는 일은 심심풀이가 아니어서 아버지는 할 수 없이 다시 낙향 길에 접어들었다. 당시 기차간을 깡패 소굴인지라 불량배들이 땅콩 오징어를 제 물건 가져가듯 쓸어 갔다고 한다.
강생회는 1936년 7월 ‘재단법인 철도 강생회’가 시초이다. 설립 목적은 철도업에 종사하다 불의 사고로 공상, 순직한 유가족들을 돕기 위한 지원금을 보내 주는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주로 열차 내 식음료 판매와 역내 매장을 운영했다. 1967년 1월 1일 재단법인 홍익회로 개칭했다. 동맹이의 아버지는 강생회에서 홍익회로 이름을 바꾸기 직전 강생회에서 물건 파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마저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지었다. 그 이유는 기차 안에서 행해지는 깡패들의 초법적 행동들 때문이다. 이로 인해 힘이 없는 동맹이 아버지는 손해만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1970년 전 후에, 기차 안에서조차 법보다 물리적 힘이 더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소는 집안의 경제적 의미 그 이상이다. 2009년 1월 개봉한 영화 「워낭소리」에서 보여주듯이 소는 가족 같은 존재인 것이다. 소로 논을 갈고, 쓰레질을 해야 모내기를 할 수 있다. 산비탈 다랑이 밭을 갈 때도 소는 함께 한다. 소가 없는 집에서는 소를 빌려야 하고 빌리면 장정 한 사람 몫의 품삯을 치러야 하는 노동력이기도 했다. 농가에 필수인 소가 있고 없고는 부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동맹이네는 그런 소가 없다.
3. 동맹이네 소가 들어오다
첫 번째 소는 오쟁이네가 쟁기질을 맘껏 부리는 것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동맹이네 집에 소를 맡겼다. 아침저녁으로 오쟁이와 돌아가며 꼴을 베다 주는 일이 ‘나’는 귀찮았다. 오쟁이 녀석이 주인 행세하는 꼬락서니도 영 마뜩잖았다.
“그람 차차 시양치 낳으믄 우리 주라고 해. 우리가 키와 주는디 고것 하나 못해.”
“네이……아부지가 뭐라고 하디? 입구녕이 너무 허황되게 넘의 밥그럭을 넘보는 고것을 뭐라고 하디?”
아버지는 “소 똥구녕 맥히는 날엔 니놈 입구녕도 밥 구경 끝이여.”하고 ‘나’에게 꼴망태를 걸어 준다. ‘나’의 집에서 두 배나 착실히 쳤지만 오쟁이네는 이태 만에 소를 몰고 가 버렸다.
두 번째 소는 장마가 끝난 후, 강에 떠내려온 소를 동맹이 가 주워 집으로 데려갔다. “주인이 찾어 올 때까장만 집이서 키우는 거닝께 정 붙이지 말어라 잉?” ‘나’는 아침저녁으로 꼴을 베어 나르고, 오후에는 소를 몰아 풀을 뜯겼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마뜩 찮아 했다. 그러던 아버지는 소가 불두덩이가 나 시집까지 보냈다. 아버지는 슬금슬금 동맹이가 하던 쇠꼴 베는 일과 아침저녁으로 여물을 쑤는 일은 물론 읍내에서 사료까지 사다 먹였다. 쟁기질 연습도 시켰다. 석 달이 지났을 무렵 동맹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소가 간 곳이 없었다.
“소 주인이 나타났단 말다.”
어머니는 또 한숨이었다.
“올라믄 진작 올지 인자사 올 건 무라냐.”
어머니는 뛰쳐나가려는 내 손을 끌어 잡았다. 나는 칭얼칭얼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 원래 그러자고 들인 소 아니었냐?”
아버지는 손수 고삐를 잡고 주인과 함께 고개 너머 경찰서로 넘어갔다고 했고, 동맹이는 혹시 쇠꼴을 베어다 놓으면 그게 무슨 주술이 되어 소가 다시 돌아올까 봐 쇠꼴을 베어다 놓았다. 저녁 무렵 아버지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돈까지 빌려 흥정해 보겠다고 소를 찾으러 갈 때 동맹이는 학교까지 빠지고 아버지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 집도 그 소가 ‘단매소’였고 그 소 없이는 농사고 뭐고 못 먹고 산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었다.
세 번째 소는 가출한 형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아 둔 돈으로 송아지를 사 왔다.
“워메, 내력 없는 손지가 하나 들어왔네.. 내력 없는 소 손지가…….”
아버지는 며칠간 외양간 앞에서 그렇게 한탄했다.
아무튼 그 송아지가 자라 송아지를 낳고, 그 송아지가 또 송아지를 낳아 지금은 얼추 네댓 대나 배가 갈린 암소가 외양간을 지키고 있으며 아버지는 그놈 기르는 재미로 사신다.
“요놈의 짐생이 정을 안 줄래도 정이 안 들 수가 없는 짐생이여, 하긴 우리 자석 놈들은 요놈이 다 갈챘응께. 난 심 하나 안 썼구만.”
소는 자식들이 무사히 학업을 마치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이다. 그래서 더 정이 든 보물인 것이다.
4. 원칙을 지키는 삶
동맹이 아버지는 ‘남의 밥그릇을 넘보며 허황되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다. 아버지는 동맹이 가 주워온 소를 원칙대로 소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아버지 또한 동맹이 못지않게 소를 아꼈던 것으로 보인다. 소를 돌려주면 그동안 소에 정들었던 상실감은 물론 생계에 도움을 주었던 일꾼이 없어지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아버지를 동맹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해만 보는 삶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원칙이 경제적 이익과 맞물리면 갈등하게 된다. 유일한 회장은 ‘네오톤토닉’이란 강장제를 만들었을 때 ‘네오톤토닉'에 환각 성분을 첨가하여 효과를 높이자’고 하는 직원들의 건의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유일한 회장은 ‘이익을 위해 국민의 건강을 해치지 않겠다.’는 그의 원칙대로 행동한 것이다. 유일한 회장이 원칙을 지킴으로써 처음에는 손해를 보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회사가 더 크게 성장하였다.
동맹이 아버지가 소가 탐이 난다고 그 소를 돌려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동맹이 와 동맹이형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을 것이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순간적인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을 지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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