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은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1840~1897)의 단편 소설이다. 알퐁스 도데의 두 번째 단편집 『월요 이야기』(1873)에 실려있는 작품으로 1871년에 발표되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 (1870년 7월 19일~1871년 5월 10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불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으로 프로이센은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로렌 지방을 빼앗았다. 1871년 독일 제국의 영토이었다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베르사유 조약으로 다시 프랑스로 영토가 되었다.
「마지막 수업」
서술자이자 주인공인 ‘나’는 오늘 아침 꾸물거리다가 집에서 늦게 나왔다. 선생님에게 꾸중 들을 것이 두려워 학교에 가지 않고 들판으로 놀러 갈까 생각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학교 가는 길목이었다. 프로이센 군인들의 훈련하는 발소리를 들으며 군인들의 발소리를 흉내 내기도 하였다. 모든 것이 학교에서 하는 프랑스어 수업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졌다.
“꼬마야, 너무 서두르지 마렴. 오늘은 학교에 천천히 가도 괜찮을 거란다.”
도제들과 함께 포스터를 보던 대장장이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가 나를 노리시나?’
나는 아랑곳 않고 학교까지 계속 달렸습니다. (생략)
학교에 도착했을 학교의 분위기는 달랐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무척 화를 내실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멜 선생님은 인자한 표정으로 “프란츠, 너 없이 수업을 시작할 뻔했구나. 어서 자리에 앉으렴.” 하셨다. 선생님은 학교 행사가 있거나 장학관이 오는 날에만 입던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는 비어 있던 교실 뒤쪽 의자에 마을 사람들이 학생들처럼 앉아 있었다.
“여러분. 오늘은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는 마지막 수업입니다. 독일 정부에서 알자스와 로렌 지방의 학교들은 이제부터 독 일어로만 수업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선생님이 오실 겁니다.
오늘은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 마지막 날이니 집중해서 듣기를 바랍니다.”(생략)
‘나’는 ‘이제 겨우 프랑스어를 쓸 줄 아는데, 다시는 프랑스어를 배우지 못하다니’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수업을 빼먹고, 새 둥지를 찾아다니거나 자르강에서 썰매를 타며 놀았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루하게 보였던 프랑스어책과 역사책이 오래된 친구처럼 생각되었다. 앞으로 아멜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해졌다.
“프란츠”
선생님은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책에서 외운 부분을 발표해 볼래?”
난 마지막 수업에서만큼은 실수 없이 멋지게 외워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첫마디부터 목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의자에 기대어 서 있기만 했습니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아멜 선생님이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프란츠, 오늘은 널 혼내지 않을 거야, 너는 이걸로 충분히 벌을 받았어.”
그러고는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생략)
아멜 선생님은 왜 충분히 벌을 받았다고 한 것일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많아.’, ‘내일 배우면 되지.’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생겼나요?
배움을 항상 내일로 미룬 탓에 우리 알자스에 큰 불행이 온 것입니다. 프로이센 사람들은 우리를 ‘프랑스 사람인 척하면서 프랑스어를 하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한다.’고 비난하고 조롱할 겁니다. 프랑스어도 제대로 못 하는데 우리가 프랑스 사람이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생략)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뒤로 미루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언어인지를 열정적으로 알려 주셨다. ‘비록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된다 하더라도 자기 나라말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훗날 그 말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열쇠를 가지고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프랑스어가 쉽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평소에도 오늘만큼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후회를 했다.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 알자스를 칠판에 아주 크게 적었다. 풍뎅이 한 마리가 교실에 들어왔지만,, 누구도 풍뎅이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수업을 영원히 기억하기로 한다.
「마지막 수업」은 말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한다. 한때 강대한 영토를 가지고 주변 나라를 호령했던 나라도 말이 사라지고 나면 그 존재를 알 수가 없게 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말이 사라지면서 민족이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한때 강성했던 청나라도 청나라 말이 아닌 한족의 언어를 사용하다가 만주족은 한족 화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한족들은 자신들의 말과 글로 인해 지배를 당했지만, 언제나 다시 살아났다.
아멜 선생님은 프랑스어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일본은 우리말을 없애기 위해 '조선어 말살 정책'을 펼쳤다. 학교에서 조선어 수업을 금지하고, 우리말로 된 신문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이름과 성씨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주시경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말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말과 글을 지킬 수 있었다.
아멜 선생님 말처럼 ‘‘우리말과 글’을 지켜냄으로써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능하게 했다.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글자를 만들어 주신 ‘세종대왕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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