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은 캡틴의 러시아말이다. 주인공 이인국 박사의 즉1등만을 추구하는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꺼삐딴 리」의 이인국 박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에 이르기까지 격변하는 시대를 살았다. 이인국 박사는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 같이 변신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은 한 민족의 비극적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목 차
1. 작가 전광용
2. 「꺼삐딴 리」 이해
3. ‘이인국’ 인물 평가
1. 작가 전광용
작가 전광용은 1919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나 1988년에 작고 하였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흑산도」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꺼삐딴 리」 「나신」 「젊은 소용돌이」 「목단강행 열차」 「흑산도」 등이 있다. 「꺼삐딴 리」는 1962년 7월 사상계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같은 해에 7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2. 「꺼삐딴 리」 이해
「꺼삐딴 리」 소설의 구성은 현재 - 과거 회상 - 현재이다. 현재 이인국 박사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서울의 유명한 병원의 원장이다. 1.4 후퇴 때 청진기가 든 손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월남하여 병원을 운영하는 병원장이 되었다. 그는 다른 병원보다 훨씬 비싼 치료비를 받는 대신 중요한 수술은 직접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첫 아내와 사별하고, 간호사였던 20살 연하의 혜숙을 후처로 삼아 늦둥이 아들을 낳고 살고 있다.
미국에 가 있는 딸 나미가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인국 박사는 자신의 의사 경력을 빛내기 위해 미국행을 준비 중이었다. 그중에도 특급 대우인 미국 국무성 초청 케이스로 미국에 가기 위해 미국 대사 브라운 씨에게 부탁해 놓은 상태이다. 이것의 확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브라운 씨의 관가로 출발하기 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새로 온 환자의 초진에서는 병에 앞서 우선 그 부담 능력을 감정하는데서부터 시작한다. 신통치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무슨 핑계를 대든 그것도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간호원더러 따돌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중환자가 아닌 한 대부분의 경우 예진은 젊은 의사들이 했다. 원장은 다만 기록된 진찰 카드에 따라 환자의 증세에 어울러 경제 정도를 판정하는 최종 진단을 내리면 된다
(중략)
그러기에 그의 고객은 왜정 시대는 주로 일본인이었고 현재는 권력층이 아니면 재벌의 셈속에 드는 축들이어야 했다.
일제 강점기 이인국 박사는 평양의 유명 외과 병원 원장으로 일본어를 고집하고, 일본인이나 친일 조선인 부호가 아닌 가난한 이들이나 불량선인 들은 가차 없이 내치는 인물이었다. 8.15 광복 후 소련군이 들어오게 되고, ‘친일 반민족 행위자’ 색출 및 처벌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하자 이인국은 ‘잠꼬대도 일본어로 할 정도’로 철저한 일본인으로 살면서 수여받은 '국어 상용'의 액자 내용물을 찢어 흔적을 없앤다. 그리고 소련말을 배우고 아들 원식을 모스크바로 유학을 보냈다.
그런데 하필 이인국 박사는 자신이 치료를 거부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춘석에게 걸려서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찍혀 형무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리고 회중시계를 소련군 병사에게 빼앗겼다.
자위대가 치안대로 바뀐 다음 날이다. 이인국 박사는 치안대에 연행되었다.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하반신이 저려 오고 옆구리가 쑤신다. 이것만으로도 자기의 생애를 통한 가장 큰 고역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앞으로 닥쳐올 얘기할 수 없는 사태가 공포 속에 그를 휘몰았다.
이인국 박사는 즉결 처형을 면한 것만을 대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어쩐단 말이야, 식민지 백성이 별수 있었어. 낡고 뛴들 소용이 이었느냐 말이야. 어느 놈은 일본 놈한테 아첨을 안 했어. 주는 떡을 안 먹은 놈이 바보지. 흥, 다 그놈이 그놈이었지.’
이인국 박사는 자기변명을 합리화시키고 나면 가슴이 좀 후련해 왔다.
감방에 전염병 이질이 발행하였다. 이인국 박사는 이질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련군 장교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혹을 제거해 주었다. 이로 인해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었다.
이인국 박사는 죽음의 직전에서 풀려나 집으로 향했다.
어느 사이에 저렇게 노어로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게 되었느냐고 스텐코프가 감탄하더라는 통역의 말을 되뇌면서 …….
이인국 박사는 스텐코프에게 부탁해 빼앗겼던 시계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 시계는 ‘제국 대학을 졸업할 때 받은 영예로운 수상 품이다. 뒤쪽에 에는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다.’ 30여 년이 지나며 모든 것이 변했지만, 옛 모습 그대로인 시계를 반드시 풀어서 등기 서류, 저금통장 등이 들어 있는 비상용 캐비닛 속에 넣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정도로 이인국 박사에게 소중한 시계였다.
이인국 박사는 ‘일대잡종(一代雜種)’의 유전 법칙이 떠오르자 머리를 내저었다. ‘흰둥이 외손자’, 생각만 해도 징그럽다.
그는 내던졌던 사진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인국은 딸의 결혼이 끔찍이도 싫으면서도 어린 아들 미국 유학을 위해서는 ‘미국 혼반을 맺어 두는 것도 해로 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 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고, 나라가 바뀌고,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이인국 박사가 캘리포니아 특산 시가를 비스듬히 물고, 택시를 타고 비행기회사로 가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3. ‘이인국’ 인물 평가
이인국 박사는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로, 소련 점령기에는 친소로, 친미로 노선을 갈아타며 살아가는 기회주의자이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비도덕적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뛰어난 의술을 속물적 처세술로 이용하면서 한 시대를 살아온 인물이다.
아무리 눈 씻고 봐도 ‘나라를 걱정하거나 양심적이다’라는 부분은 찾을 수가 없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출세 지향적으로 보인다.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을 보내놓고 6.25가 나자 1.4 후퇴 때 남으로 내려왔다. 가족의 생사보다 자신의 안위가 더 중요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인국 박사를 ‘부도덕하다, 인간 말종이다.’라고 비난만 할 수 없다. 식민지 백성으로, 전쟁의 소용돌이 속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 이인국이라는 인물을 비난하기에는 현재의 우리는 너무 잘 살고 있다. 평화로운 세상을 사는, 후대의 사람으로 그 시대를 다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왠지 이인국 박사가 의사로서 이타적 일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또한 나의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