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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논술

춘향전 (근대 의식)

by 연채움 2024.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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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함으로써 신분제의 문제를 제기한다. 분명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에서 평등을 주장함으로써 근대 시민의식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춘향전」을 근대 문학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1. 춘향의 신분 기생?

 

남원으로 부임한 신관 사또는 남원으로 부임하자마자 수노를 불러 기생 점고부터 하라 한다.

 
“기생 점고 다 되어도 춘향은 안 부르니 이미 물러난 기생 퇴기이냐?”
“춘향 어미는 기생이되 춘향은 기생이 아닙니다.”
……(생략)
 

   조선 시대 신분 제도는 양천제이다. 양천제는 신분을 크게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하였다. 양인은 다시 양반, 중인, 상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제 계층으로 구분되었으며 신분과 계층에 따라 생활 모습이 달랐다.(네이버 지식백과)
   위키 백과에 의하면 조선 시대 기생은 법적인 신분은 양민이었다. 다만 관노로서 기생이 된 자는 천민이었다. 경제적 생활 수준은 중산층 이상의 생활 수준은 향유하였지만,, 사회적으로는 천민 대우를 받았다. 기생은 교양이 있는 지식인으로 노래, 춤, 악기, 시, 서화에 능했다. 장학원에 들어가서 몇 년에 걸쳐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했다. 교육은 은퇴한 퇴기가 맡았다. 보통 궁궐이나 관청에서 열리는 잔치에서 각종 춤과 노래를 담당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에 의하면 기생은 국가에 대한 공적 의무를 져야 했던 특수 계층의 여성으로 조선 시대에 국가 의례나 궁중의 연회에서 여악을 담당했던 전문 예술인을 말한다. 이들은 궁중과 지방의 연회에 참석하여 쾌락과 유흥을 담당하였다. 또한, 다모의 역할이나 관리들을 응대하고 성적 봉사를 해야 하는 수청기의 역할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 조선 시대 기생은 대부분 모계로부터 세습되었으며 관노비의 신분이었다. 이들은 8도의 감영, 각 도의 군현 등 특정 관아에서 최하급의 관속으로 관노비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작성된 ‘관노비안’에 등록되어 관리되었다..
기생이 어떠한 신분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관아에 속해 관장의 감독 아래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2. 춘향의 문제 제기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열녀는 남편을 바꾸지 않는다.’는 그 절개를 본받고자 하옵니다. 하오나 사또께서 수차례 분부하시니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옵니다.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사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중략)
“너같이 천한 기생에게 수절이 무엇이며 정절이 무엇이냐? 구관은 작별하고 신관 사또를 대접함이 법도에는 당연하고 사리로도 당연하거늘 괴이한 말 하지 마라. 너희 같은 천한 기생에게 ‘충성’이니 ‘열녀’니 이런 말이 왜 있으리?”
 

   조선은 성리학을 중시해 특히 충, 효와 더불어 열을 강조했다. 열이란 곧 절개를 뜻한다. 절개란 믿음과 순결을 끝까지 지키려는 마음을 가리킨다. 《경국대전》에서 과부가 재혼은 한 경우 그 자식은 양반의 신분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다. 또한,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3년간 무덤을 지켜야 했고, 이후에는 평생 상복을 입고 지내도록 강요당했다. 아내가 죽음 남편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 ‘열녀문’을 세워 주었다.
   요즘도 ‘열녀문’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가끔 보게 된다. 유명한 ‘별에서 온 그대’에 마당과부라 불리는 어린 신부가 등장한다. 그 소녀는 혼례식도 올리기 전에 남편이 죽었지만, 시댁으로 간다. 드라마에서 시댁의 가족과 친정아버지는 이 어린 청상과부를 죽이려 한다. 이는 청상과부가 스스로 죽으면 ‘열녀문’을 하사 받고 남자 형제들은 과거 시험 없이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남자와 추문이라도 나면 남자 형제들의 앞길에 장애가 된다. ‘열녀박 씨 계약결혼뎐’에서도 결혼 첫날밤 남편은 죽고, 과부가 된 여자를 납치하여 우물에 빠뜨려 죽인다. 이로 벼슬을 받은 집안이 대대로 명문 집안으로 번성하는 데 현대로 넘어온 주인공이 이를 바로 잡는 내용이다. 이렇게 절개는 사대부 여자에게 강요되었던 족쇄와도 같은 덕목이었다.

 
“충효와 열녀가 위아래가 따로 있소? 자세히 들으시오. 기생 말이 나왔으니 기생으로 아뢰리다. 충효 열녀 없다 하니 낱낱이 아뢰리다. 황해도 기생 농선은 임을 기다리다 동선령 고개에서 얼어 죽었고, 평안도 기생 선천은 비록 아이지만 갈 곳 몰라 헤매던 어린 도령 돌보느라 칠거지악에 들어 있고, 진주 기생 논개는 우리나라 충렬로서 충렬문에 모셔 놓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고 있으며, 청주 기생 화월은 삼층 누각에 올라 있고, 평양 기생 월선이도 충렬문에 들어 있고, 안동 기생 일지홍은 살아서 열녀문을 받은 후에 정경부인에 올랐사오니 기생이라 함부로 마옵소서.”
(중략)
“이년 들어라! 반역하는 죄는 능지처참으로 다스리고, 관장을 조롱하는 죄는 법에 따라 처벌하며, 관장을 거역하는 죄는 엄한 형벌로 다스린 뒤에 귀양을 보내느니라. 죽더라도 서러워 마라.”
“유부녀 겁탈하는 것은 죄 아니고 무엇이오?”
 

  춘향은 절개를 지키겠다고 함으로써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는 여자들에게만 ‘절개’를 지킬 것을 강요하던 조선 사회의 모순이고 둘째는 신분에 따라 인간의 존엄이 신분에 따라 다르지 않다는 평등사상이다. 춘향은 이러한 생각을 매질 타령에 담아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춘향이 ‘절개’를 지키겠다고 항변하는 것이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죄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사회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은 춘향을 동정하고 공감하며 춘향을 지지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춘향은 대중들에게는 이몽룡의 정실부인이고 정렬부인이다. 춘향을 통해 신분을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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