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주인공 ‘나’가 서울행 기차 안에서 만난 ‘그’ 남자를 통해 나라 잃은 조선사람과 주인을 잃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알게 하는 작품이다.
1. 기차 안에서 만난 남자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천으로 지은 거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민 것이다.
인물이 복장이나 말은 그 인물의 성격과 그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 준다. 그러나 남자는 한국, 일본, 중국식 복장을 하고 있다. 단순히 남자의 복장으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단순히 국가를 알 수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의 나라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는 중국 사람, 일본사람, ‘나’가 앉아 있었다,
동양 삼국 옷을 입은 남자는 먼저 일본인에게 일본말로 ‘어디까지 가십니까?’하고 물었다. 다음은 중국인에게 중국말로 “네쌍나얼뒤?”, “니씽섬마?”라고 말을 걸었지만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 주적대는 꼴이 어쭙잖고 밉살스러워’ 쌀쌀하게 시선을 피했다. ‘나’의 시선에 들어온 어줍잖은 남자의 모습은 피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디꺼정 가는 기오?”
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서울까지 가오.”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막벌이꾼인 그는 서울역에서 내려 어디로 가면 노동자 숙소가 있는지를 물었다. 지금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지를 물었다. 노동자 숙소나 일거리를 묻는 것으로 보아 떠돌이 막일을 하는 일꾼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2. 남자의 과거
“어데서 오시는 길입니까?”
“흠,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 나왔다.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 땅을 부치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 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그 땅은 전부가 동양 척식 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에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쉬는 남자이다. 그 남자의 고향은 역둔토를 짓던 대구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다. ‘역둔토’는 나라에서 역에 내려준 땅이다. 역둔토를 소작하는 것은 개인의 땅을 소작하는 것보다는 소작료가 저렴했다. 그러나 식민지가 되면서 역둔토는 ‘동양 척식 회사’ 소유가 되었다. 동양 척식회사는 역둔토를 중간 소작인을 두어 관리하였다.중간 소작인이 동양 척식 회사의 소작인이 되고, 실작인은 소작인의 소작인이 되는 것이었다. 중간 소작인이 지주행세를 하며 수탈해 가는 문제가 심각한데도 이를 관리할 법체계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이는 동양 척식 회사의 수탈도 문제지만 구조적인 문제이다. 소작인의 소작인이 된다는 것은 중간 상인을 두고 물건을 사는 것과 같다. 이 구조적인 인금 문제는 2024년에도 고민해 볼 문제이다. 2024년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 인력파견 업체 직원 간의 인금차이는 심하다. 본청에 근무하느냐, 하청에 근무하느냐에 따라 인금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은 중간소작인이 지주행세를 하며 수탈을 묵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이 삼 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살겠다.’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 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하고 다른 곳으로 떠돌아다니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하여 무너져 갔다.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3할, 30%를 갖는다면 소작료로 내는 소출이 70%라는 것이다. 거기에 세금도 내야 했을 것이다. 농사를 짓는데도 경비가 들어간다. 결국 사람들은 그곳을 떠났다. 남자네 집도 9년 전 그의 나이 열일곱 살에 서간도로 이사 갔다. 서간도에서 남의 밑천으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2년 만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4년이 못 되어 영양부족으로 죽고 말았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규수 탄광에 있어도 보고, 오사카 철공장에도 몸을 담가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 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고향을 둘러본 남자는 벌이를 구할 겸 구경도 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고 했다. 서울은 그 남자가 안착해 살 수 있는 곳이 되어 줄까?
3. 남자의 고향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뭔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니.”
“그렇겠지요. 구 년 동안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무어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니.”
“그러면, 아주 폐동이 되었단 말씀이오?”
한 백여 호 살던 그 남자의 고향이 집터도 찾을 수 없을 만큼 폐허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참! 가슴이 터지더니. 가슴이 터져.” 하며 남자는 굵직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남자의 얼굴에서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보았다. 나라를 잃은 백성의 비참한 삶이 어떤지를 남자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다.
남자는 고향에서 전에 혼인 말이 있던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남자보다 나이가 두 살이 위였는데 이웃에 살아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같이 자란 사이였다. 그런 그 처녀를 열일곱 살 되던 겨울에 아버지가 이십 원에 대구 유곽에 팔았다. 여자는 이십 원 몸값을 십 년 두고 갚았지만, 주인에게는 육십 원이나 빚이 남아 있었다. 그런 그녀가 병이 들고 나이 들어 산송장이 되어 나올 수 있었다. 여자가 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은 집도 없고 부모도 없도 쓸쓸한 돌무더기뿐이었다.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 들 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을 끼얹은 듯하더니.”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나라 잃고 농토를 빼앗긴 농민의 처참한 현실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다. 땅을 잃은 농부는 자신의 딸을 유곽에 팔기도 하고, 땅을 버리고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고향을 떠나 보지만 떠난 사람들의 삶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디에도 나라 잃은 사람들이 안식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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