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은 ‘예의가 없고 염치가 없는 사람’, 즉 ‘막되어 먹은 사람’이란 뜻이다. 『만무방』에서는 1930년대 사람들을 만무방으로 몰아가는 농촌의 현실을 만날 수 있다.
1. 이야기의 흐름
『만무방』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응칠의 현실, 응칠이의 과거 회상, 응오의 과거, 응오의 현실 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착실한 농군이었던 응칠이가 만무방이 되었던 이유와 응오가 스스로 자신이 지은 벼를 훔쳐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과정이다.
2. 응칠이 이야기
산골 가을이 무르익어 갈 무렵 응오가 있는 곳에 와서 송이 파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벼를 수확하는 걸 도와 달라는 친구가 있어도 마다한다.
이 땅 삼천리강산에 늘어 놓인 곡식이 말짱 누 거람.. 먼저 먹는 놈이 임자 아니냐. 먹다 걸릴 만치 그토록 양식을 쌓아 두고 일이 다 무슨 난장 맞을 일이람. 걸리지 않도록 먹을 궁리나 할 게지.(생략)
응칠이는 남의 것을 훔쳐먹다 세 번이나 감옥에 갔다 온 전과자이다. 응칠이는 산에서 딴 송이를 물에 씻어서 생으로 먹고, 산에 올라온 누구 닭인지도 모르는 닭을 잡아 생으로 먹었다. 그러고는 내려오는 길에 성팔이를 만났다. 성팔이를 통해 응고개 논의 벼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도 오 년 전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아들이 있었고 집도 있었고 그때야 어딜 하루라도 집을 떨어져 보았으랴. 밤마다 아내와 마주 앉으면 어찌하면 이 살림이 좀 늘어 볼까 불어 볼까, 애간장을 태우며 같은 궁리를 되하고 되하였다마는 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농사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남는 건 겨우 남의 빚뿐.(생략)
응칠이는 세간살이를 정리하여 조선문으로,‘나는 오십사 원을 갚을 길이 없으매 죄진 몸이라 도망하니 그대들은 아예 싸울 게 아니겠고 서로 의논하여 억울치 않도록 분배하여 가기 바라노라’라고 써 놓고 집을 나왔다. 그들 부부는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었다.
이러다간 우리도 고생일뿐더러 첫째 언내를 잡겠수, 그러니 서로 갈립시다 하는 것이다. 하긴 그럴 법한 말이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붙어 다닌댔자 별수는 없다. (중략) 마지막으로 아내와 같이 땅바닥에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떨고 나서 날이 훤해지자 그는 툭툭 털고 일어섰다.
매팔자란 응칠의 팔자이겠다.(생략)
응칠이는 놀고먹는 팔자가 되어 돌아다니다가 전과자가 되었다. 전과자가 된다는 것은 어느 동네를 가거나 일만 나면 누구보다 먼저 붙들려 간다. 응칠이는 응고개 벼가 없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또 귀찮은 일이 생길까 싶어 먼저 도둑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응칠이가 응고개 가던 길에 공동묘지 고개를 넘어 산중턱에 올랐다. 그곳에서 화투를 하고 있는 재성이 일행을 만났다. 화투를 하는 사람들은 응칠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이다
응칠이는 우자스게 굴로 기든다. 그 콧등에는 자신 있는 그리고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사실이지 노름만치 그를 행복하게 하는 건 다시없었다.. 슬프다가도 화투나 투전장을 손에 들면 공연스레 어깨가 으쓱거리고 아무리 일이 바빠도 노름판은 옆에 못 두고 지난다.(생략)
그러나 현재 응칠이 관심에는 노름판에 있지 않다. 응고개 도둑을 잡으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3. 응오 이야기
응오는 아직 응고개 벼를 아직 벼지 않았다. 지주라든가 장리를 놓는 김 참판이 뻔질나게 찾아와 벼를 베라고 독촉해도 “계집이 죽게 됐는데 벼는 다 뭐지 유.” 할 뿐이다.
그것은 작년 응오와 같이 지주 문전에서 타작을 하던 친구라면 묻지 않으리라. 한 해 동안 애를 졸이며 홀자식 모양으로 알뜰히 가꾸던 그 벼를 거둬들임은 기쁨이 틀림없었다. 꼭두새벽부터 엣엣, 하며 괴로움을 모른다. 그러나 캄캄하도록 털고 나서 지주에게 도지를 제하고, 장리쌀을 제하고 색조를 제하고 보니 남는 것은 등줄기를 흐르는 식은땀이 있을 따름.(생략)
응오가 빈 지게를 지고 내려오며 눈물을 흘렸던 것이 작년 일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흉작인 올해 응오가 왜 벼를 수확하고 있지 않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응오가 말하는 추수하지 않는 이유는 아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응오가 이 아내를 찾아올 때 꼭 삼 년간을 머슴을 살았다. 그처럼 먹고 싶던 술 한 잔 못 먹었고 그처럼 침을 삼키던 그 개고기 한 매물론 못 샀다. 그리고 사경을 받는 대로 꼭꼭 장리를 놓았으니 후일 선채로 썼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근사를 모아 얻은 계집이련만 단 두 해가 못 가서 이 꼴이 되고 말았다. (생략)
응오는 아픈 아내를 의원에 보인 적이 없어서 무슨 병인지 모른다. 의원에 보인 적이 없는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4. 응고개에서 만난 응오와 응칠.
닭들이 세 홰를 운다. 멀―리 산을 넘어오는 그 음향이 퍽은 서글프다. 큰비를 몰아드는지 검은 구름이 잔뜩 낀다. 하긴 지금도 빗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그때 논둑에서 희끄무레한 허깨비 같은 것이 얼씬거린다. 정신을 바짝 차렸다. 영락없는 성팔이, 재성이, 그들 중의 한 놈이리라.(생략)
응칠이는 도둑의 허리께를 치고는 너무 놀라 정신이 얼떨떨하여 어쩔 줄 몰랐다.
그것은 무서운 침묵이었다. 살뚱맞은 바람만 공중에서 북새를 논다.
산참을 신음하다 도적은 일어나더니,
“성님까지 이렇게 못살게 굴기유?”
제법 눈을 부라리며 몸을 홱 돌린다. 그리고 느끼며 울음이 복받친다. 봇짐도 내버린채,
“내 것 내가 먹는데 누가 뭐래?” (생략
응칠이는 응오를 일어나지 못할 만치 매를 때렸다. 응오는 체면을 불구하고 땅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응칠이는 쓰러진 응오를 업고 일어섰다. 자신의 논에서 자신의 벼를 훔쳐야 하는 응오나, 남의 것을 제 것처럼 훔쳐 먹는 응칠이나 ‘만무방’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진실하고 순박한 농민들이 ‘만무방’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비단 응오와 응칠이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다. 자신의 배가 부를 때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는 말이다. 『만무방』에서 1930년대를 살았던 당대의 사람들이 ‘만무방’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독후논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벨벳 토끼 (0) | 2024.04.15 |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0) | 2024.04.12 |
고향 (2) | 2024.04.09 |
자전거 도둑 (0) | 2024.04.04 |
미국 남북 전쟁 『전쟁으로 보는 세계사』 (2) | 2024.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