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을 이야기할 때는 크리스트교를 빼놓을 수 없어요. 중세 유럽 전반의 특징이 크리스트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해야 할지 생각해 볼까요?
논제: 중세 유럽의 특징을 설명한 글을 읽고, 중세 유럽에 대해 평가하는 글을 써보자.
1. 중세 유럽의 사회 모습
중세 유럽은 봉건제가 엄격히 유지되던 시대였다. 중세 유럽의 신분 구조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기도하는 자’인 성직자, ‘싸우는 자’인 기사 귀족, ‘일하는 자’인 농민이다. 이 세 계층의 신분은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또한, 기사 내에서도 서로 주종 관계를 맺었다. 국왕은 기사들을 신하로 삼고, 토지를 주었다. 이 토지를 봉토라 하고, 봉토를 준 국왕은 주군, 봉토를 받은 자는 봉신이라고 하였다. 봉신들은 주군에게 받은 봉토를 다시 하급 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급 기사들은 봉토를 나누어 준 봉신들과 주인과 신하의 관계를 맺었다. 이를 봉건제라고 한다.
중세 유럽인들이 봉건제의 위계질서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위계질서를 거부하거나 그에 도전하는 사람은 곧 신의 뜻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 엄하게 처벌받았다. 사람들은 크리스트교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했다. 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시도 교회를 떠날 수 없었다.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황제라 해도 교회의 규칙과 질서에 따라 살아야 했다.
교회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만이 절대적 권위를 가진 진리이며, 그것에서 벗어난 가르침은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교회가 신학만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인간에 관한 관심이 줄었고, 자연과학, 철학 등의 학문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와 비교하면, 고대 그리스는 인간적이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한 것에 반해서 중세 유럽은 인간의 자유가 억압되었다. 또한, 모든 예술, 문학, 건축 등이 신앙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중세 유럽을 암흑의 시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중세 유럽은 암흑의 시기인가?
중세 문화는 크리스트교 교리와 가치관이 지배하는 문화였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은 허락되지 않았다. 오직 크리스트교의 전통과 신의 권위만을 강조하는 신학이 주로 발전하였다. 교육, 건축, 미술, 문학 등은 크리스트교의 범주 안에서만 발달하였다. 또한, 봉건 제도가 발달하면서 교회는 정신적 권위와 함께 사회적 지위도 갖게 되었다. 교황이나 성직자들은 국왕이나 제후로부터 기증을 받거나 개간을 통해 토지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세속 영주처럼 농민을 직접 지배하였다. 교회의 권력이 높아지고, 재산이 많아지면서 성직을 매매하는 등,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이 일어났다. 중세 교회가 교회 내부의 부패에는 관대하면서 ‘신의 권위’라는 엄격한 잣대로 사상·예술·종교의 자유를 억압했다. 그러한 이유로 중세유럽을 암흑기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중세의 건축과 미술은 크리스트교의 영향을 받아 신의 장엄함을 잘 표현하였다 그 예가 ‘피사의 사탑’이다. 이탈리아의 피사 성당이 그것이다. 또한, 중세에는 각지에 대학이 발달하였다. 중세의 대학은 군주나 교회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끝에 학문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시계, 은행 등은 중세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크리스트교는 중세 유럽이 발전하는 데 모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서유럽 세계의 분열과 갈등을 통합하여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도 했다. 크리스트교의 문화 아래에서 중세 유럽인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여기기 시작했다. 또한, 중세의 예술 양식은 이후 르네상스 시대가 발달하게 된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3. 중세 유럽에 대한 나의 평가
중세 유럽은 신분 구조가 엄격한 경직된 사회였다. 크리스트교의 절대적 권위로 자유를 억압한 것은 중세 사회를 암흑기로 보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면으로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그 이유는 중세 문화는 끊임없이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을 거치면서 신학자들은 신앙과 이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르네상스 시대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근대 유럽으로 발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중세 유럽을 암흑기로만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글 고재백 한솔육 플라톤
JUMP CAMP 세계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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