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후논술

안네의 일기

by 연채움 2024. 11. 28.
반응형

  『안네의 일기』는 1942년부터 1944년 사이에 있었던 실제의 일을 일기로 기록한 것이다. 안네는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에게 말하듯이 일기를 쓰고 있다. 안네의 일기에 의하면 언니 마르고트는 1926년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고, 안네는 1929년 6월 12일에 태어나 4살까지 프랑크푸르트에 살았다. 하지만 유대인이기 때문에 아빠는 1933년 네덜란드로 왔다. 아빠는 잼을 만드는 오펙타 회사 사장이 되었다. 그해 엄마와 언니 할머니 안네도 네덜란드로 왔다.

 
우리는 불안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어.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결국 1938년에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자
외삼촌 두 분은 미국으로 몸을 피하시고,
외할머니는 우리 집으로 오셨어.
그때 외할머니는 일흔세 살이 되셨어. (생략)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은 1940년 5월 10일부터 5월 14일까지 네덜란드를 침공하였다. 네덜란드군은 5월 17일까지 네덜란드의 전 영토가 완전히 점령될 때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항복하였다.

 
  1940년 5월부터 좋은 시절은 끝이 났어.
  처음에는 전쟁이 일어나더니
  그다음에는 네덜란드가 독일에 항복을 하고,
  독일군들이 네덜란드에 들어오면서
  우리 유대인들의 비참한 생활이 시작된 거야.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유대인 법이 발표되었거든.
 
  유대 인들은 유대 인임을 나타내는 노란 별을 달고 다녀야 한다.
  유대 인들은 가지고 있는 자전거를 내놓아야 한다.
  유대 인들은 전차를 타서는 안 된다.
  유대 인들은 차를 타서는 안 된다. 물론 자가용 차도 탈 수 없다.(생략)
 

  안네는 유대인이 하면 안 되는 법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상황 속에서 살았다. 1942년 7월 8일 아빠는 ‘아직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하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한다. 그 이유는 마르고트 언니에게 ‘나치에서 소환장’이 왔기 때문이다. ‘소환장’은 강제 수용소로 끌고 가겠다는 안내장이다. 안네네 가족은 멀리 도망친 것처럼 꾸며 놓고, 옷을 잔뜩 껴입고 집을 떠나 은신처로 옮겼다.

 
이곳은 은신처로는 그만이야.
눅눅하고 벽이 좀 기울기는 했지만,
암스테르담 전체에서, 아니 어쩌면 네덜란드 전체에서
이렇게 편한 시설을 갖춘 은신처는 찾아보기 힘들 거야.
우리 방은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휑한 벽에,
7월인 지금까지도 무척 썰렁해. (생략)
 

  안네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고 있다. 낮에 아래층에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어떠한 소리도 내면 안 된다. 은신처는 아빠 사무실 위층이었다. 반단 씨네 가족도 함께 생활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두 셀 씨가 와서 안네는 두셀 씨와 함께 방을 썼다. 클라이만 씨와 미프, 베프가 은신처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마 은신처의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려운 나치 치하에서 그래도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치에게 들키면 그들의 안전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어떠한 어려움에도 절대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밤마다 죄 없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에 아른거려.
  우는 아이들까지 끼어 있는 행렬이!
  독일군 두어 명이 그 사람들에게 계속 걸으라고 명령하면서
  그 사람들의 몸이 거의 부서지다시피 할 때까지 때리고 괴롭히지.
  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노인, 어린이, 아기 임신한 여자, 병든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정말 모두가 죽음의 행렬에 함께 걷고 있어.
  우리한테는 여기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정말 평온하고 좋아
  우리는 그런 비참한 상황과 동떨어져 있으니까. (생략)
 

  2층에서 매일 끌려가는 유대 인들을 보면서 두려웠을 것이다. 나치는 유대 인을 끌고 가 죽이는 것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43년 3월 27일 라디오에서 “유대 인들은 7월 1일 이전에 독일 점령 지역에서 모두 나가야 한다. 4월 1일부터 5월 1일 사이에 위트레흐트 주를 청소할 작정이다. 그리고 5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는 남불 네덜란드 주를 청소할 것이다.”라는 연설을 들었다.

 
  “아빠, 청소를 한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들은 우리를 내쫓는 것을 청소한다고 표현한단다. 우리를 바퀴벌레만도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든.”
  우리는 모두 침울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단다.
  유대 인들은 병든 가축 떼처럼 더러운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될 거래. (생략)
 

  당시 나치가 유대 인들을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면서 청소라는 표현을 쓰다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 인간의 생명이 바퀴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니!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까지일까?

 
  1944년 5월 3일 수요일
  사랑하는 키티!
  우선 이번 주의 새 소식부터 간단하게 이야기할게
  정치가 휴식기에 들어갔어.
  그래서 전할 소식이 하나도 없어. (생략)
 
  나는 이렇게 숨어 지내는 것이 위험하긴 하지만
  낭만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한 모험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재미있는 이야기 하듯 일기에 쓰고 있는 거야. (생략)
 

  안네가 극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한 의지로 이겨내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44년 8월 1일 화요일 안네의 일기 중에 ‘나는 내가 이중인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반쪽은 아주 쾌활하지만, 나머지 반쪽은 지나치게 큰 두려움을 갖고 사는 것 같아.’라고 하고 있다. 안네의 일기는 여기가 끝이라 한다.
  안네네 가족은 1944년 8월 4일 은신처는 권총을 든 사내들에 의해 발각되었다. 은신처에는 안네네 가족들을 포함 총 8명이 있었다. 판 단 씨는 1944년 9월 6일 가스실로 보내서 사망. 뒤셀 씨는 안네의 가족들과 다른 수용소에서 죽음. 안네의 어머니는 1945년 1월 6일 아우슈비치에서 숨을 거두고, 안네와 마르고트는 베르겐-벨센 수용소에서 티푸스로 사망했다. 안네와 언니 마르고트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쯤 뒤인 1945년 4월 수용소가 영국군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 말은 수용소가 한 달만 일찍 해방되었더라면 살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다.
  아버지는 1945년 4월 27일 소련군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되자 무사히 네덜란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미프 아주머니가 전해준 안네의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안네는 나치의 극한적 탄압 속에서도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갇혀 사는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도 일기를 통해 자신과 대화하고, 이를 통해 절제와 배려를 배우고 성숙해 간다. 안네의 일기 속에는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을 잃지 않는, 13살 소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과 대조 되게 정치 상황이 더욱 잔인하게 다가온다. 정치가 얼마나 잔인하게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지도 보여 준다. 또한, 자유와 인간의 존엄이 지켜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한솔 교육.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원작, 조선학 엮음. 대교 

728x90
반응형

'독후논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리학은 조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4) 2024.12.04
정몽주, 고려와 운명을 같이하다  (2) 2024.12.02
고무신  (0) 2024.11.25
무신 정권기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2) 2024.11.23
눈보라  (0) 202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