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홉 명의 꿈 이야기이다. 불제자인 성진과 여덟 명의 선녀들이 하룻밤 꿈속에서 온갖 부귀영화를 맛보고 깨어나서 불법의 진리를 깨닫는 내용으로, 인간사의 부귀영화가 일장춘몽이라고 말한다.
1. 몽자류 소설과 몽유록계 소설 구분
몽자류 소설은 ‘몽’‘몽’ 자가 붙은 소설을 의미한다. 주인공이 꿈을 꾸는 과정에서 다른 인물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경험한 뒤 다시 꿈에서 깨어난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구조이다. 대표적으로 『구운몽』, 『조신몽』 등이 있다.
몽류 록계 소설은 꿈속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서술한 소설이다. 몽유록계 소설 또한, 현실에서 꿈을 꾸고 깨어나는 환몽 구조라는 것은 몽자류 소설과 같다. 그렇지만 몽자류 소설이 꿈속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별개의 존재인데 반면에 몽유록계 소설은 현실의 자아와 꿈속 자아가 동일한 의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몽유록계 소설은 현실의 자아가 꿈속에서 경험한 것들을 꿈을 깨고 난 후에 서술하는 방식이다. 대표적으로 김시습의 『금오신화』나 『원생몽유록』 등이 있다.
2. 『구운몽』의 작품 구조
『구운몽』은 몽자류 소설로 ‘현실-꿈-현실’의 현실에서 꿈을 꾸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 현실 (성진 부귀영화를 꿈꾸다)
현실에서 성진은 육관 대사의 불제자이다. 성진과 육관 대사가 있는 곳은 5악 중에 으뜸이라고 하는 남악 형산에 자리 잡고 있다. 육관 대사는 제자 육백 명 가운데 삼십여 명이나 있었다. 그 가운데 성진은 아주 모범적인 제자이다. 대사는 성진을 지극히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서 장차 성진에게 의발을 전하고자 하였다.
육관 대사가 불법을 가르칠 때마다 동정호 용왕이 흰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으로 법회에 참석하여 진지하게 듣곤 하였다. 대사가 제자들에게 누가 동정호 용왕에게 가서 인사를 올릴 수 있겠는가를 물었다. 성진이 가겠다고 하자 대사가 크게 기뻐하면서 보냈다. 성진은 용궁에 가서 용왕이 권하는 술을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성진은 돌아오는 길에 계곡 돌다리에서 팔선녀와 마주쳤다.
팔선녀가 대답하였다.
“저희는 위 부인의 시녀인데 위 부인의 명령을 받아 육관 대사께 안부를 여쭙고 돌아가다가 잠시 여기에 머물던 참입니다. 이 다리가 원래 좁은 데다 저희가 먼저 차지해 않았으니 도인께서는 다리를 지나가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습니다. 다른 길을 찾아가셨으면 합니다.”
(생략)
“여러 낭자의 눈치를 보니 아마 소승에게 길 값을 받으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소승은 본래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마침 제게 여덟 개의 구슬이 있으니, 여러 낭자에게 이것을 바쳐 길을 사고자 합니다.”
성진이 말을 미치고 복숭아꽃 한 가지를 꺾어 팔선녀 앞에 던지니 제 쌍의 붉은 꽃봉오리가 곧바로 밝은 구슬이 되었고 상서로운 빛이 땅과 하늘을 가득 채웠다.
팔선녀가 구슬을 각자 한 개씩 줍고는 성진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으며 몸을 솟구쳐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생략)
성진은 정신이 황홀하여 어찌할 수가 없어서 단정히 앉아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남자란 세상에 태어나서 공자와 맹자의 글을 읽어 과거에 급제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가정도 이루고,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고, 아름다운 음악도 실컷 즐겨야 한다. 임금께 충성하고 백성을 위해 일한다면 이 세상에서만 부귀영화를 누리고 마는 게 아니라 죽어서도 그 이름이 영원히 남을 거야. 이거야말로 대장부의 일이야. 그러나 불법을 공부하는 나는 서너 권의 책과 백팔염주뿐이구나.(생략)’.(생략)’
성진은 눈을 감으면 팔선녀가 늘어서 있고 눈을 끄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동자가 성진을 데리고 대사에게로 갔다. 대사는 ‘성진이 여인들과 허튼 말을 주고받고, 꽃가지를 꺾어 주며 희롱하고, 돌아와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세상 부귀와 영화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더는 여기에 머물 수 없다’고 하였다.
“네 스스로 가려고 하기에 내가 가게 하는 것이다. 네가 정말 여기에 머물고자 한다면 누가 너를 가게 하겠느냐? ‘내가 어디를 갑니까?’라고 내게 묻는다만, 네가 가고 싶어 하는 그곳이 네가 갈 곳이다.”
(생략)
대사는 성진의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성진을 데리고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진은 황건 역사에게 이끌려 염라대왕이 사는 궁전인 삼라전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위 부인의 명령을 어긴 죄로 여덟 명의 선녀도 와 있었다. 성진과 팔선녀는 인간 세상으로 보내졌다.
2) 꿈속 (양소유로 부귀영화를 누리다)
“양 처사 부부가 비로소 나이 오십에 아이를 가지다니 세상에 드문 일이야. 그런데 아이가 배 속에서 빨리 나오지 않는다 하니 그게 걱정이군.”
성진은 이 말을 듣자 양 처사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알고 문득 생각하였다.
‘내가 이미 인간 세상에 태어나 여기 왔지만 정신만 그럴 뿐이고, 몸은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었겠구나.’
(생략)
양소유는 어릴 때부터 태수가 벼슬에 추천할 정도로 신동으로 소문이 났다.
소유가 열세 살에 이르자 외모가 뛰어나고 학문에는 모르는 것이 없었으며, 활쏘기와 칼 쓰기 등 능통하지 않은 게 없으니, 마치 전생에서부터 연습한 사람 같아서 세상의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생략)
양소유는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장안으로 떠났다. 서동 하나와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장안으로 가던 중 회음현에 이르러 진어사의 딸 진채봉을 만났다. 서로 ‘양류사’란 시를 지어서 서로 배필이 되기로 약속하였다. 낙양에서 계섬월을 만났다. 계섬월은 기생으로 미모와 노래와 춤 솜씨가 천하에 으뜸일 뿐 아니라 시도 모르는 것이 없고 글을 보는 눈이 신통하였다.
양소유는 정경패를 만나기 위해 여장을 하고 찾아가 거문고를 탔다. 양소유는 2차 과거 시험에서 장원 급제하고 한림원에 들어갔다. 정경패와 양소유는 혼인을 약속하고 정경패는 가춘운으로 하여금 양소유를 유혹하고 놀리게 하였다. 양소유는 난양 공주 이소화 정경패를 부인으로 진채봉은 숙인으로 계섬월, 가춘운, 적경홍, 심요연, 백능파 등의 첩을 두었다. 양소유는 토번국을 평정하고, 황제의 사위로 벼슬은 승상에 올라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다.
양소유가 남악 항산 산에 이르렀을 때 “나는 어느 날에 공을 이루고 은퇴하여 이런 산에서 한가로운 삶 될 수 있을까?”라는 말을 하였다. 양소유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는 가운데 성진의 삶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양소유의 내면이 성진아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3. 현실 (성진 깨닫고 육관 대사를 계승하다.)
정신이 아득하고 가슴이 뛰었다. 한참 만에 문득 깨달았다. 자기는 양소유가 아니라 성신 스님의 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처음에 사부님께 혼이나 풍도로 갔다가 인간 세상에 환생해 양 씨 집 아들로 태어난 것이었다. 높은 벼슬을 받고 두 공주와 여섯 낭자와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즐기던 일이 모두 일장춘몽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생략)
“네가 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을 뿐 내가 어찌 관여한 게 있겠느냐? 그리고 네 꿈은 아직 깨지 않았다. 옛날에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가 다시 장자로 변하였는데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끝내 구별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일이 꿈이고 어떤 일이 진짜인 줄 그 누가 알겠느냐? 지금 네가 성진을 네 몸으로 생각하고 꿈을 네 몸이 군 꿈으로 생각하니 너도 몸과 꿈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구나. 성진과 양소유 이 둘 중에서 누가 꿈이고 누가 꿈이 아니냐?”
(생략)
위 부인의 여덟 명의 선녀들도 속세의 꿈을 통해 깨닫고 위 부인을 떠나 부처임을 모시겠다고 대사를 찾아왔다. 육관 대사는 성진의 성숙해진 모습을 보았다. 대사는 가사와 바리때, 지팡이와 《금강경》 책 한 권을 성진에게 주고 서천으로 떠났다. 그 후 성진이 불교의 제자들을 이끌었고, 신선과 신들, 인간과 귀신이 성진을 육관 대사처럼 존중하였다. 여덟 선도 성진을 스승으로 섬겼다.
『구운몽』 김만중 대교 소빅 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