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 소개
이 작품의 작가는 에리히 케스트너이다. 「걸리버 여행기」는 영국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1726년 풍자 소설이 잘 알려 저 있다. 동화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는 「걸리버 여행기」를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말투로 원작자 조나단 스위프트가 전하고자 하는 교훈에 재미를 곁들여 전하고 있다. 에리히 케스트너(1899~1974)는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이를 위해 많은 책을 썼다. 작품으로는 「에밀과 탐정」「내가 어렸을 때」 등이 있다.
2. 줄거리
여기에서는 걸리버의 첫 모험인 소인국 편만을 소개한다.
걸리버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안티로페 호’의 의사가 되어 항해를 시작한다. 거리버가 탄 ‘안티로페’호가 폭풍우에 난파당해서 난쟁이들이 사는 릴리펏 왕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릴리펏 왕국의 수도로 끌려간다.. 릴리펏 왕국의 많은 사람들이 걸리버를 만나러 왔고, 걸리버가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에 릴리펏 왕에게는 걱정거리가 되었다. 어느 날 걸리버는 블레푸스쿠의 군함이 출항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군함을 끌어와 릴리펏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했다. 그 후에 릴리펏왕은 걸리버에게 블레푸스쿠의 수송선을 끌고 오라고 했다. 릴리펏 왕은 블레푸스쿠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만들고자 했지만, 걸리버는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릴리펏과 블레푸스쿠가 평화 조약을 맺도록 도와주었다.
걸리버는 왕비가 거처하는 궁전에 큰 불이 났을 때 깨끗하지 않은 방법으로 불을 껐다. 그 일로 인해 왕비의 미움을 샀다. 왕비의 제안으로 국무 회의에서 걸리버를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걸리버는 릴리펏을 떠나 블레쿠스쿠로 갔다. 블레푸스쿠 왕은 평화 조약을 맺을 수 있게 도와준 걸리버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어느 날 젊은 어부가 바다에 떠다니던 커다란 배 안티로페호의 보트를 발견하고 그 배를 타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 생각해 볼까요?
· 릴리펏과 블레푸스쿠는 왜 손해만 보는 전쟁을 계속할까요?
· 걸리버는 왜 싸움을 폭력적인 방법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물어보았을까요?
· 걸리버에게 눈에 띄지 않는 적이 생긴 까닭은 무엇일까요?
· 걸리버는 왜 왕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 걸리버는 왜 릴리펏을 떠났나요?
· 렐드레잘은 왜 걸리버에게 국무회의의 내용을 말해 주었을까요?
· 렐드레잘은 왜 국무회의에서 걸리버를 죽이면 안 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 왕은 왜 걸리버의 목을 베지 않았을까요?
·릴리펏왕은 왜 걸리버가 자기가 죽을 방법에 대해 동의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4. 릴리펏 왕국과 우리나라비교
릴리펏과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를 하면 비슷한 점도 있고 많이 다른 점도 있다. 릴리펏과 우리나라는 손님 잘 접대를 잘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고 ,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는 것이 비슷하다.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는 원인에 있어서도 릴리펏은 달걀을 먹는 방법이 달라서 싸우고 있다. 달걀을 먹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이념이 다르다는 것이고 6.25 한국 전쟁은 이념이 달라서 일어난 전쟁이다. 또한 블레푸스쿠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는 점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를 얻기 위해 1차 2차 세계전쟁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현재에도 경제적 이유와 땅을 더 갖기 위한 것이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나랏일을 하는 사람을 뽑는 방법에서는 많이 다르다. 릴리펏에서는 춤추기, 물동이를 어깨에 올리고 물 흘리지 않고 나르기로 나라에서 일할 사람을 뽑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나라에서 일할 사람을 시험과 선거로 뽑는다. 나랏일을 결정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릴리펏은, 왕이 법을 만들고 왕을 뺀 나머지 사람들만 법을 지킨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국회와 국무회의를 통해 만들어진 법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지켜야 한다.
5. 큰 것과 작은 것
크다와 작다는 주관적이며 상대적이다. 물질의 크기를 비교하기도 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말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물질의 크기가 크다고 해서 크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지구는 크다. 그렇지만 태양계와 비교하면 작은 점에 불과할 것이다. 태양계 또한 우리 은하와 비교해 결코크다고 말할 수가 없다. 또한 물질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그것을 결코 작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노테크놀로지가 그렇고 작은 바이러스가 그렇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난 코로나를 통해 경험했다.
우리는 크고 넓은 것은 엄마의 마음이라고 한다. 이는 가늠하기 힘든 엄마의 따뜻한 사랑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큰 것도 가장 작은 것도 없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무한히 따뜻한 엄마의 사랑도 그저 개념일 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에 대해 존중을 하는 것이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걸리버 여행기」 에리히 케스트너 한솔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