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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논술

흥부전

by 연채움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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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조선 사회는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농업 생산력이 높아지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맏아들이 재산을 독차지 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흥부전』의 표면적 주제는 형제 우애와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 권선징악이다.

 

     ―목차

   1. 조선 후기 경제적 변화

   2. 장자 몰아주기

 

1. 조선 후기 경제적 변화

   조선 후기 광해군 때 대동법의 시행이 상공업을 발달하게 하였다. ‘대동법’은 각 지방에서 특산물을 세금으로 내던 것을 쌀로 내도록 하는 세금 제도이다. 대동법의 시행으로 공납이 사라지게 되자 조정은 쌀을 팔아 필요한 물건을 사야 했다. 조정의 필요한 물건을 대신 사주던 상인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면서 조선의 상업도 발전하였다. 수공업자들도 임금기술자로 고용되거나 독자적인 수공업자가 되어 제품을 생산, 판매하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농사법이 달라졌다. 모판에 씨를 뿌려 싹이 난 후 모를 옮겨 심는 모내기법, 이랑에 씨를 뿌리는 농정법, 고랑에 씨앗을 뿌리는 골뿌림법, 특히 이모작이 가능해져 생산량이 늘어났다.

 
대도시 주변의 파밭, 마늘밭, 오이밭에서는 4 두락의 땅으로 수백 냥을 번다. 서북지방의 담배밭, 관북 지방의 삼밭, 한산의 모시 밭, 전주의 생강밭, 강진의 고구마밭, 황주의 지황밭은 논농사가 가장 잘되었을 때의 벌이와 비교하더라도 그 이익이 열 배나 된다. 요즈음은 인삼도 모두 밭에서 재배하는데, 이익이 수십만 냥이나 된다고 하니 토지의 질이 문제가 아니다. 약재 재배도 이익이 매우 많다. 목화 벌이 만이 쌀농사에 비해 이익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세유표》에서
 

인삼, 담배, 채소 등 팔면 돈을 벌 수 있는 상업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 새롭게 부를 쌓아 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놈, 흥부야! 우애라고? 아버지 살아 계실 적에 나는 늘 일만 시키고, 너는 예쁘다고 글공부만 시켰지. 그래, 너 아주 똑똑하구나!”
 

   흥부는 글 읽는 것을 좋아하는 선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놀부는 도저히 양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조선은  ‘사농공상’이라 하여 글읽는 선비를 제일로 치고, 상업을 천시하였다. 그렇지만 시대에 맞추어 실익을 챙기는 양반도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양반도 있었을 것이다. 흥부와 놀부는 형제이다. 그런데 왜 놀부는 부자이고 흥부는 가난했던 것일까?

 

2. 장자 몰아주기

놀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모든 재산을 다 차지하고 흥부를 내쫓았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되어 처자식을 거느리고 사는데, 세상살이 어려움을 모르고서 살림을 형인 나한테만 의지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부모가 물려주신 재산이 아무리 많다 한들 모두 큰아들인 내 것이다. 그런데 네가 나만 쳐다보고 놀고먹으며 지내는 모양을 정말 눈을 뜨고 볼 수 없구나. 이제 그만 처자식을 거느리고 내 집에서 썩 나가거라!”
 

  17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장남이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내외까지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추석과 설을 비롯한 명절 제사를 지내려면 많은 제사 비용이 들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장남이 모든 재산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법하고는 별개로 비교적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어느 날 흥부가 돈 벌려고 기를 쓰고 한양까지 올라가 보는데, 시골 사람이 서울에서 살기가 어찌 쉬울 수 있으랴. 아는 데가 없어 어느 주박집에 가서 종노릇을 하다가, 소주를 고는데 너무 오래 불을 땠다고 뺨만 맞고 다시 시골로 내려오고 만다.
흥부 아내도 쉬지 않고 남편 못지않게 열심히 품을 팔러 다니다. 흥부 아내가 품팔이하는 보자 하면, 오뉴월에 밭매 주기, 구시월에 김장해 주기, 곡식 받고 벼 훑어 주기, (중간 생략)
  이렇듯 흥부 부부가 밤낮으로 뛰어다니며 한때도 쉬지 않고 품을 팔아도 흥부네 식구는 늘 굶주림을 피하기 힘들다.
 

    흥부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품을 팔아도 하루 벌어 하루 먹을 뿐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흥부는 굶주림을 벗어나고자 매품팔이까지 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하였다. 땅이 없는 농민들은 산속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거나, 품팔이를 하였다. 그것도 못하면 이리저리 떠돌며 구걸을 하였다. 흥부는 이러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 줌으로써 다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부자가 된 흥부는 가난해진 형 놀부를 받아들여 ‘형제 우애’ 있게 행복하게 살았다는 훈훈한 마무리다.

 
그 뒤로 박흥부와 박놀부 형제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처럼 다시 한 집에 사이좋게 지내니, 형 놀부는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 흥부는 형 놀부를 공손히 대하며 우애 있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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